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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20,19-31 그렇다면 보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믿을 수 있을까요? 본문
(레지오 훈화)
보지 않고도 믿을 수 있었으면 좋았으련만 토마스가 부활을 확인할 방법은 상처 밖에 없었나 봅니다. 하긴 그도 그럴 것이 우리를 위해 돌아가셨다 부활하신 분이시라면 죽음의 '상처'말고 또 뭐가 있겠습니까. 믿지 못하는 토마스를 위해 다시 한 번 나타나셔서 당신 상처를 기꺼이 드러내 보여주시는 예수님과 "그분의 손에 있는 못자국을 직접 보고 그 못 자국에 내 손가락을 넣어 보고 또 그분 옆구리에 내 손을 넣어 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소."라고 말하는 토마스가 어쩌면 스승과 제자로서 어울린다 싶기도 합니다. 사람끼리의 진짜 관계가 시작되는 시점은 상대방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느끼기 시작하는 때가 아닐까 싶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에 대한 지극한 사랑으로 인간 구원을 위해 상처 입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셨고 상처를 보여주시는 것도 마다하지 않으셨습니다. 살다보면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면을 지닌 사람들을 가끔 만나게 됩니다.(물론 그게 나일 수도 있구요) 가족끼리도 그렇지요. 그런데 그 경우가 그 사람의 '아픔'인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겁니다. 과거의 상처가 지금의 잘못된 행동을 정당화할 수는 없겠지만, 관계의 회복을 위해서는 상처의 치유가 필요합니다. 그러기에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라도 우린 용서하려고 노력해 보아야 합니다. 용서를 위한 노력 역시 상처를 마다하지 않는 행위겠지요.
보지 못하면 정말 믿을 수 없을까요? 어렵지요... 그렇다면 보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믿을 수 있을까요? 그렇다면 적어도 예수님 시대 사람들은 모두 예수님을 믿었어야 했겠지요. 믿으려는 마음이 없으면 눈 앞에 펼쳐지는 기적도 보이지 않는 법입니다. 믿지 않으니 볼 수 없는 거지요. 용서도 그렇습니다. 모든 상황을 다 이해하고 나서 용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용서가 그 사람을 이해하게 하는 건지도 모릅니다. 먼저 믿고, 먼저 용서하고, 먼저 사랑하도록 노력하십시오. 늘 그러셨듯이 예수님께서도 먼저 우리에게 오십니다. 아멘.
... 이 짧은 글을 읽는 것이 얼마나 힘에 부쳤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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