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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포기를 포기하지 못함 본문
오징어를 꺼낼 때마다, 멸치 반찬을 먹을 때마다 덧붙여 지는 말, '우리 성심이 가져온'은 한동안 나를 멋적게 할거 같다. 내 가방에 실려왔고 내가 들고 오긴 했지만, 그것을 준 사람은 분명 피앗수녀이고 그 과정에 나의 의지는 거의 없었다. 그런데도 '피앗이 보내준'이라고 수식되는 것이 마땅한 그 오징어와 멸치가 한 번도 어김없이 '우리 성심이 가져온' 오징어와 멸치라고 불리고 있다.
이곳으로 오기 위해 짐을 싸면서 배달해야할 물건들 덕에 마음이 좀 불편했었다. 물론 오징어와 멸치 뿐이 아니라 작은 카드에서부터 교리책, 약, 속옷 등등 제법 부탁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우스개소리로 투덜대며 '성격 좋은 것도 이럴 땐 불편하네. 너무 쉽게 부탁들을 해서...ㅎㅎ' 했지만, 실은 진심이었다. 부탁받은 물건을 넣으려면 내 물건을 빼야했고 그래서 회색 하빗, 성경, CD 등을 들고 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보자면 많은 짐의 일차적 책임은 분명 '나' 자신이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끌어모았던 것들이 너무 많아 내 가방이 터무니없이 비좁았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내 가방에 비집고 들어온 '내가 원하지 않는 것들' 핑계를 대며 마음껏 불평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것들 때문에 '내가 원하는 것들'을 놔두고 가야하는 게 너무 싫었던 것이다.
3킬로그램이나 되는 오징어를 다 먹을 때까지 난 어떨 수 없이 '우리 성심이 가져온'이라는 말을 들어야 한다. 몇번 "에이, 오징어 사준 건 피앗이잖아요."해봤자 일단 좋게 봐주기 시작한 수녀님들 마음은 그리 쉽게 변하지 않는다. 고마운 마음은 그리 쉽게 변하지 않는 법이니까.
친구 피앗수녀한테 미안한 건 두번째다. 내 마음이 훤히 들여다보일 것만 같아 혼자서 얼굴이 자꾸만 달아오른다. 이번 일을 제대로 깨우치기 위해서라도 '벌'에 가까운 이 칭찬들을 끝까지 들어야겠지. 아니면 오징어가 나올 때마다, 멸치가 나올 때마다 얼른 내가 다 먹어치워버리던가. 후아...
삶도 이렇다. 포기하고 나면 많은 이가 기쁠 수 있다. 경험이다. 그리고 함께 살아가는 많은 이들의 기쁨은 어느새 내 기쁨이 되곤 한다. 결국 '포기하면... 결국 나도 기쁘다'라는 공식이 나온다. 종내에 도달할 세상이 그닥 쉬이 오지 않는 것도 '포기'를 포기하지 못하기 때문이겠지. 앞으로 살면서 혹시 또 이런 '포기'의 기회가 내가 주어질지는 모르겠다만, 그때의 내 선택은 당연하리라 싶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다른 사람에게 이 기회가 왔을 때 선뜻 이 공식을 일러줄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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