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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수도자 꽃 본문
진짜 이름은 모르겠고, 우리집에선 ‘수도자의 꽃’이라 불린다. 법정 수련기 때 첫 일자리가 정원관리였다. 오틸리아 수녀님 따라다니면서 물주고 거름주고 옮기고 분갈이하고... 그때 수녀님이 수련 잘 받으라고, 좋은 수도자 되라고 이 꽃을 주셨댔지. 왜 수도자의 꽃인지 그때는 몰랐지만 키우다 보니 조금씩 알겠더라구.. 창가에 두고 지금도 열심히 키우고 있는데, 수련자 때 힘들어서 창가에 앉았다가 문득 떠오른 생각이다. 어느 날, 내가 기르는 꽃이 오랜만에 꽃을 눈여겨본다. 며칠 동안 내 마음 추스르기에 바빠 물 한 방울, 눈길 한번 주지 않았는데 어느샌가 화알짝 꽃을 피웠다. 하얗고 가느다란 꽃잎 다섯 장 창문을 열다 혹시나 부딪힐까 옆으로 아예 돌려놓기까지 했는데 기어이 해를 향해 방향을 틀고 꽃을 피웠다. 내가 물주고 내 맘대로 자리를 옮겼기에 꽃의 주인은 당연히 나라고 여겼는데 진짜 주인은 따로 있었구나. 내 맘대로 생각하고 내 의지대로만 행동했기에 나의 주인은 당연히 나 자신이어야 한다고 여겼는데 진짜 나의 주인 역시 따로 계셨음을... 꽃에게 주인 행세를 하던 나는 실은 꽃과 함께 걸어가야할 친구였었으니 누군가 따뜻하게 말 걸어주지 않아도 묵묵히 주인을 향해서만 꽃을 피우는 삶 나에게 섣불리 충고하지도 내 약점에 못마땅한 눈길을 주지도 않은 채 내 옆에 조용히 자리 잡고 날 위해 기도하고자 해만 바라보고 있었구나 하느님만 바라보고 있었구나... 하고 싶은 모든 말은 가슴에 품고 너만의 꽃으로 피우고 있었구나, 친구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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