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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굿바이 동물원 본문
강태식 지음. 한겨레출판사.
"울고 싶은 날에는 마늘을 깐다."
도서관에 예약까지 해서 이 소설을 본 이유는 이 문장이다.
"누구에게나 울고 싶은 날이 있다. 그런 날 나는 마늘을 깐다."
한 남자를 울고 싶게 만드는 나날에 대한 이야기,
그래서 마늘을 까게 되는 남자의 이야기에 대한 마음.
주인공은 정리해고의 칼날을 비켜서지 못하고 온몸으로 막아낼 수 밖에 없었던
서른여섯의 대한민국 남자.
그가 건조하게 뱉어내는 말이 너무나 아프게 다가왔다.
"세상은 이렇게 아름다운데 먹고사는 건 왜 이렇게 힘이 든 걸까?"
"아, 진실이라는 건 언제나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하나 보다."
알지 못해도 좋을 것들을 알게 될때,
그것도 물리적 심리적 외로움이 가장 깊어 누구보다 위로가 필요할 때
우린 알게 된다.
"눈사태처럼 와르르, 그때 내 속에 있던 무언가가 무너져내렸다.
처음엔 그게 뭔지 몰랐다.
고릴라가 타준 다방 커피를 마시면서 알게 되었다.
난 아직 모든 것이 낯설고 두려워, 위로받고 싶어.
그때 와르르 무너져내린 건 살면서 한 번도 돌본 적 없는 내 영혼이었다.
나는 다방 커피를 마시면서 내 영혼을 위로했다.
그동안 소홀하게 대해서 미안해, 이런 나를 용서해주겠니?"
안아줘야 할 가장 가까운 사람을 지켜보면서도
그에게 다가가는 길을 잃기도 하고...
"아내는 거짓말을 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나는 안다. 매운 건 마늘이 아니다.
눈물을 흘리는 것도 마늘 때문이 아니다.
사는 게 맵다. 매우니까 눈물이 난다.
한때는 나도 마늘을 까면서 눈물을 흘린 적이 있다.
그래서 안다. 마늘보다 사는 게 백배쯤 맵다는 걸,
그리고 마늘을 깐다는 게 사람을 얼마나 외롭고 쓸쓸하게 만드는지도."
모두가 끝없이 행복하게 웃기만하고 모두가 넉넉하고 넘치는 삶을 살 수는 없다.
하지만 인간으로서의 하한선은 모두가 함께 만들 수 있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가 그렇게 살지 못했기에,
주인공의 자조섞인 중얼거림이
나를, 이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이들을
베풀기보다 누리며 사는 것이 더 많은 이들을
부끄럽게 만든다...
"사람이면 어떻고 고릴라면 어떤가.
사람이라고 해서 꼭 행복한 건 아니다.
고릴라가 불행하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단 말인가.
인권? 존엄성?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는 그런 게 없다.
다 옛말이다. 있는 놈과 없는 놈이 있을 뿐이다.
빈부의 차가 개인의 가치를 판가름하고 결정짓는다.
상대적 빈곤감이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들고,
돈 몇 푼 때문에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
인본주의 대신 물본주의가 물 만난 고기처럼 판을 치고,
황금보기를 돌같이 해야 하는데 사람 보기를 돌같이 하고,
그래서 목숨보다 돈이 중요하고,
그래서 툭하면 약을 먹거나 밀폐된 자동차 안에서 연탄을 피우거나
건전하지 못한 목적으로 한강에 가고,
아무리 자본주의라지만 정부는 그런 국민을 나 몰라라 방치하고,
하지만 자본주의라는 게 일한 만큼 버는 건데
이 나라를 보면 그런 것 같지도 않고,
민주주의라는 것도 그렇고,
인간은 모두 평등하다는 소리를 들으면 씨발, 욕부터 나오고,
있는 놈들은 있는 놈들끼리만 노는데, 결혼도 있는 놈들끼리만 하는데,
민주주의는 개뿔, 인간은 모두 평등하다니 지랄,
전부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처럼 들리고,
그래도 먹고살기 위해 계속 몸부림쳐야 하고,
쥐구멍에 해 뜰 날은 영원히 오지 않고,
내일을 태양 같은 건 절대 뜨지 않고, 그런 세상인데......
어쩌면 고릴라가 더 행복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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