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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설자은, 불꽃을 쫓다 본문

雜食性 人間

설자은, 불꽃을 쫓다

하나 뿐인 마음 2025. 3. 3. 14:39

정세랑. 문학동네.

 

불꽃.

1) 타는 불에서 일어나는 붉은빛을 띤 기운.

2) 금속이나 돌 따위의 딱딱한 물체가 부딪칠 때 생기는 불빛.

3) 스파크(방전할 때 일어나는 불빛)

 

설자은이 쫓은 것은 불 자체가 아니라 불이 일으킨 기운, 무언가가 부딪쳐 생긴 빛, 흘러나올 때 일어나는 빛, 불꽃이었다. 

설자은은 누군가를 향한 사랑이, 누군가가 주었던 모욕이, 앗긴 것 혹은 앗은 것이, 없애서라고 감추려는 악의와 끝내 놓지 못한 선의가 일으키는 마음을 쫓았다. 잡기 위해, 혹은 만나기 위해, 때론 보내기 위해...

 

"자은을 위해주었던 사람, 자은이 따르고 싶었던 사람, 처음부터 어쩐지 좋았던 사람이 한편으로는 겁탈자의 무리를 이끌 수도 있다는 것을 자은은 받아들였다. 어그러짐을, 오염을, 곤죽이 되고 범벅이 된 온갖 것들을 평정하려 들지 않고 그대로 삼켰다. 날뛰는 것들을 삼키고도 태연함을 내보이는 법을 배웠다." 이 문장을 오래도록, 삼키듯 몇 번이나 읽고 읽었다. 


p.97
“무엇에 쫓기나?”
“지난날의 과오에 쫓기는 자가 많을 테고, 오지 않은 날들에 쫓기는 자도 더러 있을 테지. 어느 쪽인지만 명확히 알아도 덜 쫓길 텐데. 다시 한번 말하지만, 긍휼히 여기게. 쫓기다 사로잡힌 자들을.”
“자네는 어떻게 그 속내를 아나?”
“어른 없는 어린아이가 먹고살려면 밤의 심부름꾼이 될 때가 있으니 아네. 밤 심부름꾼이 살아남으려면 사람의 무늬를 알아봐야 하고. 어느 바다 어느 땅에 가도 반복되는 무늬가 있다네.”

p.134
"청금서당이 만약 우리와 함께해 주었더라면, 막을 수도 있었습니다. 수는 딸렸다 해도······"
"그런 가오는 순식간에 세우기 어렵지."
뒤늦게 후회하긴 쉬워도 일이 닥쳤을 때 바로 판단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었다.
"어쩔 수 없이 하게 되었다손 쳐도 우리를 그렇게까지 바짝 만들 필요가 있었을까요? 등뼈라곤 없는 백제 잔민 놈들 같으니! 신라에 대한 충성을 그딴 식으로 증명하겠다고 지레 나서는 꼴이 치가 떨리게 싫었습니다."
"그래도 ······ 시킨 자들이 더 싫어야 하는 거 아닌가?"
"이긴 자들이 기고만장한 것보다, 진 자들이 비겁한 게 왜 더 싫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닮은 처지라서 그랬을지도요."

p.234
"쓰이는 자라는 자각이 있다면 우스운 일로 목을 잃지 말라."

p.319
"힘이 고이고 또 고일 뿐 흐르지 않는 신라가 얼마나 버틸 것 같은가?"
노길보가 물어왔다.
"힘은 흐르고 있습니다. 제가 노길보님을 쫓아 여기 이른 것이 그 증참 아닙니까?"
"어떤 것이 한 사람의 눈에는 멎은 것으로 보이고 다른 사람의 눈에는 흐르는 것으로 보이면 누가 맞을까?"
"우리가 죽고 난 뒤의 신라가 말해주겠지요."

p.325
"자은을 위해주었던 사람, 자은이 따르고 싶었던 사람, 처음부터 어쩐지 좋았던 사람이 한편으로는 겁탈자의 무리를 이끌 수도 있다는 것을 자은은 받아들였다. 어그러짐을, 오염을, 곤죽이 되고 범벅이 된 온갖 것들을 평정하려 들지 않고 그대로 삼켰다. 날뛰는 것들을 삼키고도 태연함을 내보이는 법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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