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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나는 무엇을 믿는가 본문

雜食性 人間

나는 무엇을 믿는가

하나 뿐인 마음 2022. 2. 24. 23:54

한스 큉 지음. 이종한 옮김. 분도출판사.

조금 (많이?) 기대하고 읽었던 책이다. 물론 숙고할 것들도 많이 얻었지만, 책을 읽는 내내 어허허…하면서 수도 없이 웃었다. 번역이 이렇게도 ‘사람’을 번역할 수도 있구나 싶었다. 마음에 새길 문장도, 숙고할 문장도 많았지만 답답함이 더 컸네, 지금 돌아보니…

너무 자신으로 가득 차서, 예수님 지척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면 안 되겠다…가 결론이고 이 책의 교훈이다. 알면 좀 더 낫겠다고 늘 생각하는 편이지만, 송 신부님의 책도 그렇고 한스 신부님 책도 그렇고… 세상이 어떻게 변해가든 진짜 중요한 것은 시대의 특성에 따라 외면 당한다 해도 여전히 중요하다.

그리고 내겐, 예수가 중요하다, 그 무엇보다.

그건 그렇고… 나의 글은 나의 무엇을 가장 잘 드러낼까. 혹 감추고 싶은 내 모습이, 미처 몰랐던 내 모습이,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내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내 블로그를 나는 어떡할 건가.


p.13 ~ p.14
"‘믿음’은 확정된 교리를 진실이라고 인정하는 것 이상을 의미한다. 믿음은 인간의 이성·마음·손을 움직이게 하는 어떤 것, 인간의 사유·의향·감정·행위를 포괄하는 어떤 것이다."

p.17
"삶에 대한 신뢰는 물론 그냥 주어져 ‘있는’ 것이 아니니, 배워야 한다."

p.21
"성숙한 근본적 신뢰, 삶에 대한 신뢰 없이는 사람이 사람의 위기들을 이겨 낼 수 없다."

p.26
"나는 어떻게 불합리성에 떨어지지 않으면서, 이 불확실하고 모순적인 세상 현실과 나 자신에 대해 긍정적인 근본 태도를 지닐 수 있을까?"

p.28
"근본적으로 불신하는 사람들은 그 무엇으로도 만족시킬 수 없다. 그들은 자기 주위에도 불만, 징징댐, 냉소의 분위기를 확산시킨다."

p.42
"통제는 결코 신뢰를 대체하지 못하며, 전문적 능력이 성격상의 장점을, 효율이 품성을 대체하지 못한다."

p.50
"사실 행복하기 위해서는 많은 것이 필요하고, 불행에는 필요한 것이 거의 없다."

p.52
"실제 체험에 집착하는 우리 사회의 슬로건 “중요한 건, 내가 행복한 거야”는 아무튼 나의 삶의 원칙이 아니다. 항구한 삶의 기쁨은 “나는 행복해”라는 문구가 아니라 오히려 “나는 나 자신을 온전히 이해하고 화해했으며 나 자신에게 만족해”라는 문구에 표현되어 있다."

p.53 ~ p.54
"아이에게 자기 자신과 낯선 세상에 대한 신뢰를 습득하기 위해 엄마나 적절하나 본보기 인물이 필요하듯이 성인에게도 언제나 우호적이지는 않은 환경 속에서 자신의 신뢰를 보존하고 실증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이 필요하다. 자기 자신에 대한 존중 그리고 관용을 위한 믿음직하고 개방적인 교육은 온전한 삶에 매우 중요하다."

p.54
"비판적 판단은 정당하지만, 선입견의 일반화와 성급한 비난은 금물이다."

p.57
"나는 재치 있고 기발한 정치 풍자나 쌈빡한 코미디와 그 따끔한 반어, 조롱, 비꼼을 반대하는 것은 전혀 아니다. 하지만 특히 정치와 경제 또는 시사평론 분야의 세력 다툼에서 생각 다른 사람들을 의도적이고 악의적으로 모욕하고 상처를 입히는, 아니 모조리 멸시하는 비난을 일삼고 그로써 진리와 가치와 규범들을 몽땅 쓸모없게 만들어 버리는 냉소주의에는 반대한다. 개인에 대한 조직적 경멸과 명예훼손의 수단으로 악의를 발동하는 현상."

p.75 ~ p.76
"사람은 자신의 덧없음과 언제라도 닥칠 수 있는 죽음을 억지로 떨쳐 내려 애쓸 때보다 그것들을 직시할 때, 삶의 기쁨을 필경 더 잘 견지할 수 있다. "

p.99
"인간에게 선이란, 아주 기초적으로 표현하자면, 오래되었든 새롭든 인간이 참으로 인간이 되도록 돕는 것이다."

p.133
"자기실현이 삶에 방향을 설정해 주는 궁극적인 삶의 의미를 정말로 마련해 주는가? 특히 심리학자와 정신요법 의사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 즉 개인의 정체성, 통합된 인격, 심각한 위기도 극복하도록 도와주는 통일성과 안정성의 감정을 과연 자기실현이 제공해 주는가?"

p.134 ~ p.135
"겸손은 위선, 노예근성, 나약함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겸손은 윗사람이 반대하면 즉시 무릎 꿇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겸손은 안분지족이지, 자책과 자기 포기가 아니다."

p.136
"나는 우리의 아주 평범한 일상과 이기주의적으로 잘못 이해된 자기실현을 염두에 두고 있다. 이것은 우리 가운데 누구에게서나 다양한 방식과 모습으로 뚜렷이 드러날 수 있다."

p.138
"자기주장은 때때로 자기 극복을 요구한다. 내적 · 정신적 공허는 삶의 가치와 삶의 의미에 의해서만 채워질 수 있다. 그러나 삶의 의미를 나는 고립된 나의 자아에서가 아니라, 오직 인간관계 한가운데에서만 찾을 수 있다. 다시 말해서 나의 자아는 ‘너’에게, ‘우리’에게 열려 있을 때만, 나의 삶의 의미를 찾아 얻는다. 나와 함께 살아가고 내가 언제까지나 거듭 의지하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가족에게, 동료에게, 동무 동아리에게, 동료 인간들에게 활짝 열려 있을 때에만 그렇다. 삶의 의미를 나는 자신을 초월하고 넘어서서 내가 몸 바치는 인간, 공동체 또는 이런저런 일을 지향할 때에만 찾아 얻는다. 그러나 여기서 거창하고 고상한 일들만 생각하고 일상과 일상의 과제들을 망각한다면, 잘못 짚었다고 하겠다."

p.186
"한순간만이라도 깊이 생각해 본 사람은 성공, 성취, 행복은 우리의 노력에만 달려 있지 않다는 사실을, 우리가 많은 것을 성취했어도 받은 것이 더 많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행복이 주어진 것이 뜻밖의 일은 아니라 해도(우리가 정직하다면) 흔히는 받을 자격이 없는 것이라는 사실을 어렴풋이 느끼게 된다."

p.224
"영이신 하느님은 고통 가득한 세계 전개 과정을 초월해 계시지 않고, 오히려 그 한가운데에서 그렇게 작용하신다. 인간들과 사상들 안에서, 그것들과 함께, 그것들 가운데에서 작용하신다."

p.234
"성경 시대 사람들에게 기적은 하느님이 그것을 통해 이 세상 안의 당신 현존을 계시하시는 그야말로 위대한 ‘표징’이었다. ‘하느님 권능의 위업’. 과연 기적 이야기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해석하고 확증하고자 하며, 하느님에 대한 신앙을 강화하고자 한다. 성경 어디서도 기적에 대한 믿음을 요구하지 않는다. 기적이 존재한다는 것을, 또는 이런저런 사건은 기적이라는 것을 믿으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오히려 단순히, 하느님이 역사 안에서 역사(役事)하고 계시다는 믿음을 기대한다."

p.238
"우리는 하느님의 권능과 영광의 그분의 ‘섭리’를 번번이 나중에야 비로소 깨닫는다. 나의 삶을 되돌아보면, 내가 각별한 떠받침과 인도를 받아 왔다는 사실을 나중에, ‘등을 보면서’ 깨달을 수 있다. 나는 그것으로 충분해야 하며, 또 사실 충분하다."

p.288
"하느님의 ‘전능’을, 마치 하느님이 ‘절대적’(ab-solut: 섞이지 않고 떨어져 있는) 주권자로서 모든 것에서 ‘벗어나 있고’(los-gelöst) 건드려지지 않으면서도, 모든 것을 주재하고 모든 것을 행하는(또는 행할 수 있엇을) 것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다른 한편 하느님의 권능을 아예 무능으로, 그분의 지혜를 어리석음으로 대체해서도 안 된다."

p.292
"평정을 이루어 자신 안에 머무르는 게 아니라 자신을 온통 내어 주는 사람."

p.304
"내가 예수의 길에 동행하고 일상에서 나 자신의 십자가를 꿋꿋이 진다 해도 결코 고통을 완전히 극복하고 제거할 수는 없다. 그러나 나는 믿음 안에서 고통을 견뎌 내고 이겨 낼 수 있다."

p.304
"신앙인에게 열려 있는 길은 고통을 스쳐 지나가는 길이 아니라 고통을 뚫고 나아가는 길이다. 신앙인은 바로 고통에 대한 ‘적극적 무관심’ 안에서, 개인적인 삶 안에서만이 아니라 인간 사회 안에서, 고통과 고통의 원인들과 기꺼이 맞서 싸워야 한다."

p.306
"예수 그리스도 추종으로 사람은 오늘의 세계에서 참으로 사람답게 살고 행동하고 수고하고 죽을 수 있다. 행복할 때나 불행할 때나 삶에서나 죽음에서나 하느님께 의지하고 사람을 도우며."

p.310 ~ p.311
"하느님 앞에 나는 있는 그대로의 나로 존재하며, 하느님에게 가치 있고 소중하고 용납된 인간으로 존재한다. 이것은 내가 더는 일을 통해 인정받지 못해도, 더는 성과를 올려 사람들 앞에서 빛날 수 없어도 그렇다. 늙고 병들어도, 더는 ‘생산적’이지 못해도, 나는 언제까지나 용납된, 아니 사랑받는 인간으로 존재한다."

p.329
"그리스도교 메시지는 나에게 소비 강박 심리를 거슬러, 소비로부터의 자유를 가르쳐 준다. 자신의 행복을 오로지 향유와 유복함 위에 구축하는 일은 의미가 없다는 것을, 사람은 위세와 경쟁 법칙에 지배되어서는 안 되고 또 잉여 숭배에 동참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 그리고 이 시대의 이런저런 병적 욕망이 사람 마음속에서 졸고 있는 영원한 행복에 대한 고귀한 갈망을 질식시키도록 해서는 안 된다는 것도 가르쳐 준다."

p.329
"모든 일에서 ‘비용-성과 관계’에 신경 쓰고, 끊임없이 더 좋은 것을 찾고자 하는 저 ‘최대주의자들’은 대개 행복한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끊임없이 계속 비교하지 않고 일단 자신이 한 선택에 만족할 줄 알며, 그래서 소박하게 절제를 실천하는 저 ‘욕심 적은 이들’이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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