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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타워 본문
배명훈 연작소설. 멜라스.
그저 재밌는 소설 한권이 아닌데도, 모처럼 재밌는 소설처럼
이야기에 푹 빠져들어 읽었다. 참 오래간만.
기발하고 재밌다라는 표현은 모자라도 한참 모자란다.
'통찰력을 갖춘 상상력과 날카로운 풍자, 능청맞은 유머 감각이야말로
소설가 배명훈의 최대 강점이다.'라는 누군가의 소개글을 읽으며
아...이런 동생(이런 사람이 동생이라니....ㅠㅠ) 옆에 두고
매일매일 격려해주고 아껴주고 붇돋아주고 싶다는 생각을..ㅋ 해봤다
재치있게 슬쩍슬쩍 이야기를 전개해가지만
스치기만 해도 날카롭게 베이는 상처처럼
내 무디어진 감각들을 번쩍 잠깨게 만드는 소설.
소설 속의 또 하나의 소설인 '자연에 관한 이야기'는
끝없이 마음속에 여운을 남기며
복음 말씀 되씹듯이, 시구절 하나하나 의미를 부여해가며 읖조리듯
날 집중시켰다..
"햇살이 따가운 날에는 키가 자랐고 폭풍이 치는 날에는 줄기가 단단해졌다.
이천이백 살 때부터 생각이라는 것을 했다.
삼천 살 무렵에 철이 들었고,
삼천이백 살을 넘기고부터는 소리를 들었다.
대지가 거대한 심장을 올리는 소리가 뿌리를 타고 어렴풋이 전해져왔다.
나무는 심장이 없었다.
그래서 그 소리를 듣기 위해 좀 더 바짝 귀를 기울였다.
좀 더 힘껏 대지를 움켜쥐었다..."
그러면서도 별 이야기 아닌 것 같은 이런 문장에서
난 내 청춘의 한 부분을 고스란히 위로받는 기분이었다.
"겨울이 오는 것은 나무의 책임이 아니었다.
나뭇잎이 죽는 것도 그의 책임이 아니었다.
죽는다는 게 뭐지?
이미 천 년 전에 신이 되어버린 나무가 뿌리를 느슨하게 풀어놓고
깊은 생각에 잠겼다..."
나아가 침묵하지 못한, 끊임없이 분주했던 내 분원생활을 성찰하며
고해성사라도 봐야할것같은 심정이 되게 만드는 문장이란...
"나무는 다른 나무들이 하는 말을 잠자코 듣고만 있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뿌리를 느슨하게 해두어야
다른 나무들이 하는 말이 더 잘 들렸다.
그렇게 이십 년 동안 나무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다른 나무들이 하는 이야기를 가만히 듣기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무는 드디어 대지를 힘껏 움켜쥐었다."
그러면서도 불쑥, 선교사로서의 정체성마저 툭 건드려주시니...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책임을 지지 않기로 한 날,
그렇게 심판의 날이 다가왔다."
배명훈씨가 상상 속에서 끄집어낸 빈스토크는
사실...내 안에서, 각자 심중 깊은 곳에서
무심코 혹은 철저한 계획하에 쌓고있었던 무엇인가의 형상화일테다.
이 총각, 참 매력적이네...
2011.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