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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와스티 왕비(에스 1,9-22) 본문

성경의 여인들

와스티 왕비(에스 1,9-22)

하나 뿐인 마음 2020. 10. 23. 22:03

 

Ernest Normand (1857–1923)

 

와스티는 크세르크세스 임금의 왕비였다. 어느 날 임금은 잔치 도중 와스티 왕비에게 왕관을 씌워 어전으로 데려오게 하였다. 왕비의 용모가 어여쁘기 때문에 그 아름다움을 백성들과 고관들에게 보여 주려는 것이었는데(1,11) 임금의 분부를 왕비 와스티가 거절하였다. 이에 임금은 격분하여 속에서 분노가 타올랐고(1,12) 대신들과 함께 폐위를 결정했다. 이유는 와스티의 이야기를 알게 된 부녀자들이 힘을 얻어 남편을 업신여기게 되고 대거리를 할 것이니(1,17-18) 와스티 왕비를 폐위함으로써 모든 부녀자들은 위아래 할 것 없이 남편을 공경하게 될 것이기(1,20) 때문이다. 이 이유는 임금이 문의한 ‘절기를 아는 현인들(1,13)’이 내놓은 답이라는 것이 놀랍다. 임금의 측근으로 왕국에서 첫째가는 현자들의 생각... 그 시대에도 현자들이라는 사람들이 어명과 판례에 관한 전문가들을 위해 제시한 ‘폐위’는 돌이키기 어려운 선례로 남는다. 아무리 먼 길이라 해도 한 걸음 한 걸음은 얼마나 중요한가.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부인들을 위해 따로 잔치를 베풀 수 있을 정도로(1,9) 궁궐 안에서 결정할 힘과 실행할 힘도 지닌 왕비였던 와스티. 하지만 아무리 아름다운 용모를 지녔다 하더라도 사람들 앞에서 눈요깃거리가 되기를 단호히 거부함으로써 폐위되고 말았다. 아무리 임금의 분부라해도 자신이 사람들 앞에 내놓는 소유물처럼 다루어지는 것을 스스로 허락하지 않았던 와스티 왕비는 자신의 거부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모르지 않았을 것이다. 

 

이것만이 정답이고 이렇게 해야지만 옳은 일이라고 말할 수도 없고, 말해서도 안될 것이다. 하지만, 스스로의 존엄을 왕비라는 자리와도 바꾸지 않았던 와스티를 자꾸 마음 속에 그려보게 된다. 그 누구도 쉽게 갈 수 없는 곳까지 간 여인이지만,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여인들이 물건처럼 여겨지는 것이 당연하게 생각되던 그 시대에 자신을 소중하게 간직한 여인. 와스티 여왕이 걸어간 길을 보며 어떤 이들은 남편을 업신여기기보다 자신을 존중하는 태도를, 무의미한 대거리보다 타당한 목소리를, 남편에 대한 공경보다 인간에 대한 공경을 가지게 되었을 것이다. 와스티 왕비는 바른 말보다 바른 행동으로 길을 낸 사람이다.

 

폐위된 와스티 왕비의 이름은 성경에서 금방 사라졌다. 당당한 여인이 이렇게 금방 사라지는 것이 아쉽기는 하지만 와스티의 자리를 뒤이은  사람은 다름 아닌 에스테르이다. 그 걸음은 더 분명하게, 더 당당하게, 더 용감하게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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