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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거룩한 독서의 여정(엔조 비앙키) 본문

이 여자가 사는 곳

거룩한 독서의 여정(엔조 비앙키)

하나 뿐인 마음 2020. 3. 8. 15:10

우선 성령께서 내려와 주시길 청하고, 다음으로 기도의 분위기를 가다듬는다. 그리고 성경 안에 계신다고 믿음으로 내가 고백하는 그리스도의 얼굴을 뵙고자, 나 자신에게서 빠져나오는 자세를 갖춘다. 그런 다음 본격적으로 '읽기' 과정에 들어가는데, 무엇보다 먼저 본문을 객관적이고도 정확하게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연속 독서의 원칙을 지켜서, 읽고 싶은 방식대로 읽는다든지 즉흥적인 선택을 한다든지 해서 본문에 일종의 폭력을 가하지 않도록 한다. 이 모든 것이 주관주의를 물리치고 "기록된 것"의 타자성을 존중하며 있는 그대로의 본문에 접근할 수 있도록 이끌어 준다. 그리하여 주님에 대해 이야기하는 그 본문에 대한 객관적 지식을 갖추고, 마침내는 그 본문을 통해 말씀하시는 주님의 현존을 알아채기에 이른다.

 

'묵상' 단계에서는 성찰과 연구를 통해 생긴 이런 지식이 심화된다. 성경의 메시지가 뚜렷이 떠올라, 독자, 즉 '듣는 이'에게 상처를 입히거나 위로를 주는 일이 생기게 된다. 그러나 이는 늘 십자가에 달려 죽었다가 부활하신 분이 드러나는 과정에서 생기는 일이다. 어떻든 이제 성경은 나를 향해 오는 '말씀'이 되고 나와 관련된 어떤 사건의 계시가 되어,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바치신"(갈라 2,20) 그리스도의 사랑을 드러내 보여 준다. 그러므로 '묵상'은 마치 수축과 이완 운동과도 같이, 본문을 자신에게 적용하면서 동시에 자신을 본문에 적용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그리하여 마침내는 "성경으로 숨쉬는" 경지에 이르게 한다. 이렇게 '묵상'은 개인과 공동체의 삶을 하느님과 그분 말씀 앞에서 읽고 심판하는 장소가 된다. 일상의 삶에서 하느님 말씀에 복종하며 살아 나가기 위해, 나 자신을 말씀의 까다로운 요구 앞에 세워 놓고 성찰하는 것이다.

 

이리하여 생각은 기도로 조율되어 통합되고, 한 인간으로서의 삶이 객관적으로 하느님 앞에서 펼쳐지게 된다. 구약성경의 개인적 탄원 시편들에서 볼 수 있는 경우가 정확이 이와 같다. 거기서 시인은 억울한 제 사정을 판관이신 하느님께 보이면서 자기 상황을 하느님 앞에서 읽고 있는 것이다. 나에게 주어진 한 말씀을 전해 주는 성경 앞에서 대화가, 그러니까 '기도'가 시작된다. 이리하여 하느님과 스스럼없는 관계로 들어가게 되는데, 성경은 우리를 바로 이 지점으로 이끌어 주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바로 이 지점에서 계약, 다시 말해 '값진 은총'을 수용하게 되는 것이다.

 

믿음의 자세로 성령의 활동에 활짝 열린 채 성경에 다가가는 덕분에, 기도는 독백이나 자기 관찰, 그리고 자기 행실을 윤리적으로 살피는 일 정도에 그치지 않게 된다. 기도는 비로소 '상대방'을 얻고 그 현존 안에서 벌어지는 일이 된다. 그리하여 '관상'으로, 다시 말해 나 자신 안에서 상대방의 이 현존이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으로 이어진다. 이렇게 해서 나는, 내 몸과 내 삶이 그리스도께서 사람들에게 당신 자신을 드러내시는 투명한 통로가 되도록 부르심을 받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관상'은 성경에서 드러났던 그리스도의 얼굴이 지금 바로 형제의 얼굴에, 그리고 역사와 온 창조계에 드러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이런 관상은 복음의 정신을 깊이 알고 그리스도와 함께 호흡하며 하느님의 시선으로 보게 될 때에만 가능하다.

 

요컨대 거룩한 독서는 영적 성경 해석으로서, 하느님께서 보내신 말씀으로 하여금 그 과정을 완결하시도록 허락해 드리는 일이다. 그리하여 종국에는 사람 안에 '성찬의 삶'("성찬적으로 되십시오."(콜로 3,15))과 그 거룩함을 빚고 회개의 삶을 꽃피게 한다. 이것이 바로 열매이면서 동시에 그 효력이기도 하다(이사 55,10-11참조). 거룩한 독서는 성경을 읽는 사람의 전적인 헌신을 요청하며, 성찰과 자기 인식을 위한 사색의 능력도 요구한다. 그리하여 하느님 말씀 앞에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서서, 그분과 맺는 이 관계가 대화와 계약 안에서 자기 신원을 알아들을 것을 요구한다. 이 과정에서 내적인 변화와 삶의 변화가 필요한 것은 당연하다. 거룩한 독서는 '선택'을 배우는 장소, 영적 식별과 자기 제어를 배우는 장소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행위와 일을 과감히 쇄신해 나갈 수 있으니, 거룩한 독서가 우리의 원의와 느낌과 내적 생활을 쇄신하게 해 주기 때문이다. 

 

< 영적 성경 해석(분도출판사)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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