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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과거 본문

雜食性 人間

빛의 과거

하나 뿐인 마음 2019. 10. 2. 23:37


은희경 장편소설. 문학과지성사.

너무나 적확한 표현으로 해야할 말을 하는 작가. 인간의 내면에 대해 이리도 솔직하고 과감하게 말할 줄 아는 작가. 각각 뚜렷하고 가면마저 투명한 군상 이야기. 은희경 작가의 책은 읽으면 읽을수록 -표현은 어렵지만- 내가 왜 이 작가를 이렇게 좋아하나 매번 알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늘 번듯한 이유를 대진 못하면서도. 그래서 이번엔 신형철 평론가의 글을 전부 옮겨본다.

“은희경이 1970년대 말 서울 어느 여자대학교 기숙사 이야기를 썼다고 하면 우리가 다음과 같은 기대를 품는 것은 당연하고 정당하다.
첫째, 이 소설은 당대의 정치적 공기와 문화적 풍속도를 생생하게 복원해낼 것이다. 게다가 그것을, 정치적 중심부가 아니라 (반)주변부에서 더 미묘하게 흔들리는 주인공의 눈으로, 문화의 지역 격차를 예민하게 감지할 수밖에 없는 지방 출신 상경민의 눈으로 그릴 것이다.
둘째, 77학번 신입생의 첫 1년이 그려진다면 이 소설은 여성의 경험적 진실에 충실한 ‘입사 이야기 initiation story’의 전형을 보여줄 것이다. 거기에 ‘제2의 화자’ 혹은 ‘소설 속 소설’과 같은 장치를 동원해 소설은 본래 ‘경합하는 진실들의 장’임을 입증하기도 할 것이다.
셋째, 이 소설은 또렷한 젠더 렌즈에 포착된 한국 근대성의 성별을 드러낼 것이다. 군사주의적이고 가부장적인 시스템의 폭력이 여성 주체의 삶의 가능성을 제한하고 억압해왔음을 말할 때 이 소설의 주인공은 여럿이면서도 하나이고 하나이면서 여럿이 될 것이다.
넷째, 은희경 문학의 힘은 ‘무엇을’에도 있지만 ‘어떻게’에 더 있다. 관념어를 적재적소에 투입하고 빈틈이 없게 구문을 압착하여 서술 대상을 틀어쥐는, 특유의 악력握力 넘치는 문장이 매력적일 것이다. 그런 문장으로 씌어진 인간 연구와 지적 논평을 향유하는 것은 은희경 독자의 특권적 쾌락이다. 

그리고 이변은 없다. 기대는 어김없이 충족된다. 은희경의 신작이 ‘나왔다’는 소식은 뉴스가 되지만 그 작품이 ‘좋다’는 사실은 뉴스가 되지 못한다.”
-신형철 문학평론가-


"약자는 위로받기보다 차별이 없는 존중을 원한다. 결점이 있는 사람에게 베풀어지는 특별한 배려를 받는 게 아니라, 다수와는 다른 조건을 가졌을 뿐 동등한 존재로서의 권리를 누리기를 원하는 것이다. 맞은편 대열에서 응원을 보내기보다는 내 곁으로 와서 서는 것."

"약점을 숨기려는 것이 회피의 방편이 되었고 결국 그것이 태도가 되어 내 삶을 끌고 갔다.내 삶은 냉소의 무력함과 자기 위안의 메커니즘 속에서 굴러갔다."

"그동안 자기 자리가 아닌 곳에 가지 않고 모르는 것에 대해 말하지 않아야 한자고 생각해왔던 오현수는 모르는 것이 거의 다라는 생각을 하나 더 보태게 되었다. 그녀에게는 그것이 다른 조건을 가진 삶에 대한 존중의 한 방식이었다."

"나를 지금의 인생으로 데려다 놓은 것은 꿈이 아니었다. 시간 속에 스몄던 지속되지 않는 사소한 인연들, 그리고 삶이라는 기나긴 책무를 수행하도록 길들여진 수긍이라는 재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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