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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2230자 김인국 칼럼집 본문

雜食性 人間

2230자 김인국 칼럼집

하나 뿐인 마음 2019. 8. 12. 22:56


김인국 지음. 철수와 영희.

사회읽기 시리즈1. 한겨례 신문에 연재했던 칼럼을 모은 책. ​공동선이었가, 기쁨과희망이었던가 하여튼 이 신부님 글을 읽고 놀랐었다. 이런 글은 대체 어디에서 나오는가... 하고. 이후 시국미사나 정의구현사제단 이름으로 준엄한듯 하면서도 한없이 따스한 말을 들려주는 이는 대체 누구인가.

누구 탓이라 할 것도 없지만 알면 알수록 조금식 실망이 쌓이는 만남에 오랫동안 실망해 왔었다. 누구라도 붙들고 왜 이리도 중차대한 시기에 눈맑은 스승이 없는지, 글과 손발이 사뭇 다른 종교 지도자는 왜 이리도 많은지, 번번이 양떼를 남겨두고 결국엔 제 갈길로 가버리는 목자들은 왜 또 이렇게 많은지 묻고 탓하고 싶었다. 내겐 남탓할 자격이 누구보다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렇게 서운하고 답답했다. 그래서 이 신부님 글은 아직, 아껴가며 읽는다. 그만둘 수 없는 이 삶을 사는 동안, 오래오래 이분의 글이 삶과 가깝길 기도하면서. 멀어질 순간이 올라치면 그분이 대변했던 아프고 가난하고 외로웠던 이들의 소박한 기도가 사정없이 이 신부님을 제 길로 내몰아 주길. 목자가 이끄는 양떼, 목자를 밀어주는 양떼.

"그리스도교가 하필 가난하고 핍박받는 사람들 가운데 태어난 한 아기를 하느님의 아들로 높이 받드는 이유는 아무리 볼품 없는 사람이라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신성을 지닌다는 사실을 말하기 위해서다."

"신앙인들부터 십자가가 이기심과 탐욕을 포기할 줄 모르는 자들이 빚어낸 비극이라는 사실에 주목하지 않다 보니, 그럭저럭 예수의 죽음은 죄 많은 인류를 위해 스스로 제물이 된 눈물겨운 사랑으로 변주되고 말았다. 그새 범죄는 미화되고, 악의 장본인들은 어둠 속에 정체를 숨겼으니 이것은 누구의 간계였을까?"

"언제라도 버리고 떠날 수 있는 자들이 진짜 주인일 수는 없다."

"자신이 귀한 이유를 밖에서 찾아헤매는 것이 불행의 시작이란다."

"성경에서 말하는 거들 짝이란 커피, 카피를 지원하는 단순 보조가 아니라 ‘신적 조력’ 즉 절대자의 보호와 도움을 드러내는 자를 의미한다."

"하느님의 아들을 죽인 죄를 두고 “오 복된 탓이여!”하며 노래 부른다면 미쳤다고 할 테지만 그것이 성경의 생각이다.

"궂은일 하는 사람들의 고마움은 하나도 모르면서 펄럭이는 국기에 대해서만큼은 깍듯이 경의를 갖추던 자들이 지난날 너무나 흔했고, 아직도 지천이다."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바짝 좁히기도 하고 멀찌감치 벌리기도 한다마는 마냥 좋다고 해서 사이를 없애서도 안 되고, 이것저것 다 싫다고 간을 칸막이 삼아 그 안에 숨어서도 안 된다. 자기를 버리고 자기를 잃어도 탈이고, 남을 외면하고 남과 끊어져도 문제다. 인人의 간間을 어떻게 유지하느냐에 따라 인간은 더불어 큰 숲을 이루는 조화로운 나무가 되기도 하고, 저만 알고 저만 위하는 고사목이었다가 한순간에 자빠지는 사상누각의 기둥이 되기도 한다."

"진심으로 자기를 소중하게 여긴다면 안팎을 깨끗이 쓸고 닦자. 최선이 타락하면 최악이 되느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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