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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마르 6,7-13 주님께로 돌아서기로 마음을 굳힌 자에겐... 본문
"길을 떠날 때에 지팡이 외에는 아무것도, 빵도 여행 보따리도 전대에 돈도 가져가지 말라고 명령하시고, 신발은 신되 옷도 두 벌은 껴입지 말라고 이르셨다." (8-9절)
이렇게 아무 준비도 없이 떠나라니. 준비가 부족한 채로 떠난다기 보다 작정하고 준비를 하지 않도록 하시는 말씀이다. 나의 계획이 철저할수록 그분의 섭리가 끼어들 틈이 없다는 것, 아무리 열심히 준비했다 해도 막상 벌어지는 뜻밖의 일 앞에선 철저한 준비도 무용할 수 있다는 걸 모르는 바 아니나, 그래도 어찌 이렇게. 근데 또 안다는 거다, 준비가 필요없다는 말이 아니라 '더더욱 나에게 의탁해라.'는 뜻임을.
"어디에서나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그 고장을 떠날 때까지 그 집에 머물러라. 또한 어느 곳이든 너희를 받아들이지 않고 너희 말도 듣지 않으면, 그곳을 떠날 때에 그들에게 보이는 증거로 너희 발밑의 먼지를 털어 버려라." (10-11절)
대상을 고르지 말 것이니, 네 뜻을 쫓지 않았으니 실패한다 해도 발밑의 먼지를 털듯 깨끗한 포기도 괜찮다 하시지만 이 역시 쉬운가. 맘편히 머무를 곳에서 시작했다면 실패할 확률도 낮고, 굳이 서로 얼굴 붉힐 일도 없을텐데 말이다. 근데 또 안다는 거다, 당신 역시 마음에 드는 이들만 구원의 길로 부르시지 않았고, 그 길을 거부한 이들을 탓하지도 당신을 자책하지도 않으셨다는 것을.
어떤 날은 이 복음이 그렇게 부담스러울 수가 없다. 마침 오늘이 그랬다. 도무지 마음에 남는 구절 하나 찾을 수 없어 읽고 또 읽었다. 묵상 시간이 끝나갈 때까지 묵상으로 내려가지 못하고 읽기만 반복하다가 묵상 시간이 끝이 났다.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읽으며 성경을 덮으려는데, 한 문장이 눈에 들어온다.
"그리하여 제자들은 떠나가서, 회개하라고 선포하였다."
성경은 제자들이 무엇을 얼마나 준비했는지, 정말 아무것도 지니지 않은 채로 길을 떠났는지, 누구집에 머물렀는지, 정말 발밑의 먼지를 털었는지 말해주지 않는다. 다만 떠나가서, 회개하라고 선포하였다. 복음선포의 첫번째 대상이 자기 자신이듯, 회개도 그렇다. 회개하라고 외친 예언자 치고 회개의 길을 먼저 걷지 않은 자 없었다. 주님께로 돌아서기(회개; 메타노이아 Metanoia 回心회심)로 마음을 굳힌 자에겐, 내가 쉴새 없이 중얼거리고 있는 자잘한 불평불만은 이미 끝났겠지.
결국 나도 모르게 이 기도를 바치며 묵상을 끝냈다..
"주님, 저부터 회개할 수 있도록,
오늘도 끊임 없이 당신께로 돌아설 수 있도록
저를 더 낮추시고 저를 더 열어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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