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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카 1,5-25 #dailyreading 나에게도 애써 숨겨둔, 나마저도 까마득하게 잊어버린 줄 알고 살아가는 바램이 있을까. 본문
루카 1,5-25 #dailyreading 나에게도 애써 숨겨둔, 나마저도 까마득하게 잊어버린 줄 알고 살아가는 바램이 있을까.
하나 뿐인 마음 2018. 12. 19. 09:08"두려워하지 마라. 즈카르야야, 너의 청원이 받아들여졌다." (13절)
그렇게 수도 없이 읽었으면서도 마치 처음 본 문장처럼 문득 가슴에 와 닿는 말씀이 있다. 내게 오늘은 이 말씀이었다. 성경에 쓰인 글 만으로 모든 것을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성경 만으로는 즈카르야가 하느님께 청한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이는, 우리도 알 수 없지만 어쩌면 즈카르야 자신도 하느님께 청원한 적이 있었는지, 그 청원이 무엇인지 알지 못할 지도 모른다는 뜻도 된다. 게다가 그가 성소에 들어가 분향을 하는 이유 역시 사제 직무를 수행할 당번으로 제비 뽑기에 당첨되었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지향을 품고 향을 올린 것이 아니라 공적 신분으로 그곳에 들어갔던 것. 그런데 그곳에서 천사를 만났고, '너의 청원이 받아들여졌다'는 말을 들었다.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성실히 수행하던 중이었다.
천사가 말한 그 '청원'이라는 것은 이어지는 천사의 말로 알 수 있다. 아들을 낳는 것. 많은 이들이 기뻐하고 즐거워할 아이를 갖게 되는 것. 그는 알고 있었을까, 자신의 청원이 '아들'이라는 것을. 그의 말대로 그는 늙은이고 아내도 나이가 많았다.(18절) 도저히 마음에 품을 수 없는 바램. 불가능한 바램은 마음에 품으면 품을 수록 맞닥뜨릴 절망도 큰 법이니, 애써 바램을 품어가며 스스로 상처 입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세월 만큼 희미해졌을 소망, 간절했던 만큼 마음 속 깊은 곳에 묻혔을 원의. 나에게도 애써 숨겨둔, 나마저도 까마득하게 잊어버린 줄 알고 살아가는 바램이 있을까. 하느님과 나, 단 둘만 있을 수 있는 유일한 장소인 성소에서 하느님은 천사를 통해 그 바램을 말씀하셨다. 아니 알려주셨다.
기도를 통해 우리는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램을 하느님께 알리려고 한다. 하지만 하느님 역시 기도를 통해 우리에게 하실 말씀이 있으시다. 내가 나의 말하기를 멈추고 그분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려고 할 때, 어쩌면 귀를 기울일 힘조차 없어 그저 들리는 것에 자신을 내어놓을 때 우리에게 알려 주신다. 잊어버린 바램, 많은 이가 기뻐하고 즐거워할 바램을 말이다. 드디어 기도의 진짜 응답이 들려온다.
이후 묵상은 그 후 일어난 일은 일은 잠시 접어두고 이 '바램'에 조금 더 머물러 봤다. 하느님은 왜 나의 케케묵은 이 소원을, 태곳적에 포기해서 더 이상 기억나지도 않는 이 '바램'을 알려주셨는가. 그 이유는 반 년도 더 지나서 엘리사벳의 혼잣말을 통해 알게 된다. "내가 사람들 사이에서 겪어야 했던 치욕을 없애 주시려고 주님께서 굽어보시며 나에게 이 일을 해 주셨구나." (25절) 즈카르야는 엘리사벳을 통해 깨닫게 되었겠지.
* '바람'이라고 써야하지만 '바램'이라고 굳이 써봤다. 아직도 '바람'이라는 단어는 내게 너무 낯설다, 잊힌 내 '바램'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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