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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하느님께서 지옥으로 보내는 사람이 있을까? 본문
데니스 린, 마태오 린, 쉴라 린 지음. 김인호, 장미희 옮김. 성바오로 출판사.
믿는 모든 이들이 이 질문에, 말도 안돼!하며 손사래치며 웃어 넘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
치유를 위해서 바오로 사도가 한 것이 있는가? 전혀 없다 하느님께서는 바오로 사도에게 어떤 전제 조건도 요구 하지 않으셨다. 회개하기 전에 회개를 위해서 해야 할 것이 전혀 없었다. -하느님께서 지옥으로 보내는 사람이 있을까
물론 회개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거나 의미가 없다는 뜻이 아니다 이것은 우리가 먼저 회개해야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오히려 정반대이다 바오로 사도가 아직 회개도 하지 않았을 때 하느님께서 그를 사랑하고 치유해 주셨기 때문에 비로소 그는 회개할 수 있었다. 우리를 회개로 이끄는 동기는 단 한 가지다. 그것은 우리가 회개하지 않았을 때 하느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고 치유하셨다는 사실이다(1요한 4,19). 따라서 회개는 하느님의 사랑과 용서를 얻기위해서 필요한 것이 아니라 바오로 사도의 경우처럼 하느님께서 이미 시작하신 치유를 우리 자신의 삶에 완전히 동화시키고 기쁜 마음으로 그 치유의 삶을 누리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다.
신학자 리처드 맥 브라이언이 설명한 것처럼 "예수님도 예수님의 뒤를 잇는 교회도 사람들이 지옥으로 갔다고, 혹은 지금 실제로 지옥에 사람들이 있다고 선언한 적이 없다."
우리가 아는 한가지 사실은 우리가 심판 해서는 안 되며 우리 모두 하느님을 향해 마음을 열도록 기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이 흠숭하는 하느님을 닮아 가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자신에 하느님 이미지를 치유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십자가 위 예수님의 죽음은 갚아야 할 보석금이나 벌금을 위한 형벌이 아니라 속죄의 행위였다. 속죄는 atonement라고 표기하는데 이는 인간과 하나가 되는 at-one-ment행위이다. (조지프 캠벨)
삶의 고통과 '하나'at one가 됨으로써 예수님께서는 연민이라는 인간의 정서를 불러일으키셨으며 이렇게 예수님의 십자가는 우리가 서로를 위한 연민의 삶을 살도록 초대한다.
진정으로 하느님은 우리가 하느님의 사랑을 얻기 위해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아도, 도움조차 청하지 않아도 회개하지 않은 죄인인 우리를 사랑하고 치유하신다는 말인가?
하느님의 사랑과 상은 회개를 통해 쟁취하는 것리 아니며 그것은 나를 치유하고 결국 회개를 가능하게 하는 하느님께서 거저 주시는 선물임을 발견하게 된다.
"인간의 불신앙이 하느님의 사랑 앞에서는 아무런 효력이 없으므로 지옥을 선택하는 것은 '불가능한 가능성'impossible possibility이다." (Karl Barth)
치유는 우리가 슬퍼할 것을 슬퍼하고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고통을 받으시며 우리가 겪는 가장 깊은 고통 속에 항상 함께하신다는 것을 깨달을 때 비로소 일어난다.
"고통에 대한 우리의 분노는 곧 그 고통에 대한 하느님의 분노" Pierre Wolf
"죄를 짓는 능력은 자유의 사용이 아니라 자유의 남용에서 비롯된다." 아우구스티노
악은 선택하는 것이 자유인가? 의미 있는 유일한 자유는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그대로의 나 자신이 되는 자유이다. 카알 바르트
일반 그리스도인들의 남성적인 하느님 이미지는 매우 견고하지만 교회는 남성이든 여성이든 신학적 가르침을 통하여 하느님께 어떤 성도 부여한 적이 없다. 산드라 슈나이더스Sandra Schneiders
성삼위의 위격을 표현할 때 사용하는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명칭은 본성이나 본질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성을 의미하는 것. 나지안조의 그레고리오
예수님께서 Abba라는 말을 사용하신 것은 하느님을 여성과 반대되는 남성으로 드러내기 위함이 아니었고 예수님 시대의 가부장적이고 냉담한 하느님 이미지에 반하여 하느님은 매우 친밀한 부모와 흡사하다는 것을 드러내기 위함이었다.
예수님은 하느님을 남성으로만 경험하지도 생각하지도 않으셨다. 그렇지 않았다면 예수님은 하느님을 여성적인 은유들로 소개하실 수 없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