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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단종애사 본문
이광수 장편소설. 이정서 편저. 새움.
어떤 길을 걸었든, 그건 내 선택이고 내 삶이다.
사람이 슬픈 것을 보고 울기를 잊지 않는 동안, 불의를 보고 분을 참지 못하는 것이 변치 않는 한, 이 사건, 이 이야기는 사람의 흥미를 끌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작가의 말-
죄가 없기에 죽여야 하는 것이외다...
뒷일을 생각해서 목숨을 아껴둔다는 것은 의가 아니어. 보지 못하는 장래를 위하여 목전에 맞닥친 대의를 저버리다니, 말이 되나. 우리네가 이번 의에 죽으면 후일에 그때도 의에 죽을 사람이 자연 또 있을 것이여. 이개의 말은 여러 사람의 뜻을 결정하는데 가장 힘이 있었다.
풀과 나무들의 본성은 가을 서리 내릴 때를 당해서야 분명히 알게 된다. 갈대는 말라 버리고 참대는 더욱 푸르다. 서리 치는 모진 바람이 밤새 불 때에는 떨어질 잎은 다 떨어지고 소나무, 잣나무만 끄덕없이 청청하다.
건강하고 젊고(사십이면 한창이 아닌가) 뜻하는 바를 못 이루어 본 적이 없는 바에 순풍에 돛을 달고 물결 없는 한바다로 선유하는 것 정도 밖에는 인생이 보이지 아니하니. 그런 수양대군에게 반성이 있을 리 없고, 후회가 있을 리 없으며, 무상이 있을 리 없다. 이런 것들을 깨닫기 위해서는 얼마간 더 인생의 어리석은 경험을 쌓아야 하는 것이다. 그가 이 쓰라린 무상의 술잔을 비우지 않았다면 모르겠지만, 그는 10년이 얼마 넘지 못하여 마침내 이 술잔을 마시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한 권세를 영원한 것으로 여겨 전력을 다하여 못할 것 없이 이것을 추구하였던 것이다.
수양대군은 의를 알고 의인을 알고 불의를 알고 불의한 사람을 안다. 그는 임금 중에도 가장 총명한 임금인 세종대왕의 아드님이요, 임금 중에도 가장 인자한 임금인 문종대왕의 아우님이다. 총명이 뛰어난 그가 무엇인들 모를 리가 없건마는 다만 그의 억제할 수 없는 욕심이 모든 덕과 모든 총명을 눌러 버린 것이다. 후일에 그의 인자함과 총명함이 다시 바로 서려 할 때는 벌써 만고에 씻을 수 없는 불의를 행한 뒤였다. 일생 동안, 목숨을 다해, 그의 지난 허물을 씻어 버리려고 나라를 위하여 좋을 일을 많이 하느라 무진 애를 썼으나 양심의 가책은 그런 공로로 갚아 버리기에는 너무 컸고, 게다가 그러한 공로로 지나간 죄를 벗으라고 목숨이 오래 허락되지도 않았다. 그래서 그는 마침내 후회의 피눈물을 흘리며 눈을 감아 버린 것이다. 그로 하여금 이러한 비극의 주인공이 되게 한 억제할 수 없는 패기는 실로 그의 숙명이었다 이 성격의 결함(특징이라면 특징)은 총명한 그이 힘으로도 어찌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그는 이 패기의 날랜 말에 올라앉아, 그 뛰어난 총명과 예지로 자기가 달려가는 길이 무엇인지를 보면서도, 안 되겠다 안 되겠다 하고 계속 후회하면서도, 걷잡을 수 없이 그가 마침내 굴러떨어진 절벽 끝으로 가버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