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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루카 17,26-37 본문
대림시기가 다가온다. 종말에 관한 복음. 요새 부는 바람만큼 복음도 쌀쌀하다.
"그날 옥상에 있는 이는 세간이 집 안에 있더라도 그것을 꺼내러 내려가지 말고, 마찬가지로 들에 있는 이도 뒤로 돌아서지 마라."
아침 공동 렉시오 디비나 시간, 꺼내러 내려가지 말라는 말씀이 마음에 걸렸다. 지나간 기억들을 애써 꺼내려고 자꾸만 기억의 저편으로 한없이 내려가는 나. 어제의 일, 며칠 전의 일, 또 그 전의 일... 때로는 툴툴 털어버려야 할 지난 상처까지 보존하려고 애쓰는 사람은 결국 자명한 결과를 마주하게 되겠지. 그 세간들이 그동안 필요없는 물건이어서가 아니라 이제는 더 이상 가지고 있을 이유가 없어서이다. 우리가 간직해야할 것은 더 이상 세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넓은 들에서 뒤로 돌아보지 말라는 말씀 역시 볼 것이 없어서도 아니고 내가 자유롭지 않아서도 아니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선 앞을 봐야 하기 때문이다.
자꾸만 마음에 와서 박히던 목소리들을 애써 간직해서 아픔을 재차 확인하고 일부러 고통 속에 잠길 이유가 없다. 꺼내러 내려가지 말아야 한다. 치유과 극복을 위한 기억은 내 가는 길에 아버지께서 내 앞에 가져다 보여주실 것이다. 그때 고개 돌리지 않고 당당히 마주해야겠지만, 고개 돌려 뒤를 응시하면서 더디게 가거나 걸음을 멈춰선 안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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