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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루카 17,26-37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본문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는 날까지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하였는데...(26절) 복음을 읽을 때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는 일들'이 뭐 그리 죄란 말인가 싶은 생각부터 들었던 때가 있었다. 아직 배울 것도 놀랄 것도 행복할 것도 많다고 생각했고, 선이 악을 너끈히 이긴다고 믿었고, 결과와 무관하게 기도할 줄 알던 때 말이다. 그러다가 속상하면 미워하고, 속마음을 감추고, 연민의 마음을 애써 접고, 받은 만큼(어쩌면 더) 되돌려줄 생각을 자꾸만 하게 되는 일들이 늘어나면서 속마음을 외면한 채 아닌 척 일상을 유지할 수도 있다는 걸 조금씩 알게 되었다.
먹고 마신다는 이 단순한 말 안에 다른 불순한 것들이 포함될 수 있음을, 장가들고 시집가는 일이 얼마든지 책략일 수 있음을, 사고 팔고 심고 짓는(28절) 일로 남을 해코지할 수도 있음을 안다는 것은 사람의 일상이 간절한 기도요, 정갈한 몸가짐이요, 지고한 수행일 수도 있음을 안다는 것. 그렇다면 나의 일상은 얼마나 투명하고 명료한가. 사람은 누구나 조금씩 죄를 짓고 산다지만 조금이라도 자신을 변화시킬 생각이 전혀 없는 사람들은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고 롯이 소돔을 떠나도 얼룩진 일상을 유지하면서 마지막 시간을 맞겠지. 그날, 세간을 꺼내려 내려가지도 말고, 뒤로 돌아서지도 말라는 말씀은 마음 깊이 묻어둔 회한도, 나를 붙드는 과거의 추억도, 미련도, 죄책감도 다 거기까지라는 말씀처럼 들린다.
"주님, 어디에서 말입니까?"(37절) 제자들은 장소를 피해서 마지막 순간을 모면해 볼 양이었던가. 이 복음을 읽는 나는 무슨 질문을 하고 있는가. 하느님의 나라가 우리 가운데 있듯(17,21 참조) 독수리들이 모여들(37절) 곳 역시 우리 가운데에 있을 것이다. 어디인지, 언제인지를 물을 것이 아니라 지금의 나를, 내 일상을 들여다 봐야할 것이다. 지금 내 삶이 결국 마지막 삶으로 이어질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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