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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단장지애(斷腸之哀) 본문
산벗꽃의 꽃잎들은 이제 그 힘을 잃고 이리저리 바람결에 따라 흩날려 무심히 흐르는 계곡물에 내려앉는다. 하얀 꽃잎들이 마치 나비 같다. 수십 년에 겪은 일이다. 대학입시에 실패하고 소위 재수를 할 때였다.
학원 강의실에서 어엿한 대학생을 꿈꾸며 공부에 나날을 보내던 어느 여름날 토요일 오후에 몇몇이 달콤한 일탈을 기도하였다. 그 곳은 물이 맑기로 유명한 옥천군의 지탄이라는 곳이었다. 대전에서 완행열차를 타고 도착한 곳은 유려한 풍광이 우리 모두의 눈을 사로잡았다. 당시에는 구하기 어려운 석유 버너와 코펠 등을 가지고 나름의 낭만을 추구했던 것이다.
하얀 모래가 깔린 강변은 이제 까까머리를 막 면한 스무 살 청춘들이 해방감을 느끼기에 충분한 곳이었다. 저녁을 해먹고 달려간 강물의 촉감은 천녀의 옷자락 느낌을 닮은 감미로운 그 자체였다. 그런데 한 친구가 시간이 오래 흘러도 강물 밖으로 나오지 않는 것이었다.
당황한 우리는 그 친구의 집으로 연락을 했다. 다음날 이른 새벽에 현지에 달려온 그의 어머니는 어스름한 물안개가 낀 강변에서 “아무개야!”하며 그 친구의 이름을 목 놓아 부르고 있었다. 마치 온몸을 쥐어짜듯, 온 마음을 다하여 그 이름을 부르던 그 어머니의 목소리는 아직도 가슴에 남아 있는 듯하다.
<세설신어(世說新語)> 출면(黜免) 편에 단장지애(斷腸之哀)의 고사가 있다. 촉나라의 마지막 숨통을 죄이고자 진나라 장수 환온(桓溫)이 양자강을 거슬러 올라가고 있을 때, 병사 중 하나가 강변에서 놀고 있던 새끼 원숭이 한 마리를 납치하였다.
그 원숭이 어미는 군사를 태운 함선을 100여 리를 쫓아오다 폭이 좁은 협곡에서 새끼를 태운 배를 향해 몸을 날렸는데, 배에 이르기도 전에 그만 죽고 말았다. 한 병사가 그 어미의 배를 갈라보았더니 어미의 창자가 마디마디 끊어져 있었다. 환온은 새끼를 납치한 병사를 매질하고 대열에서 아냈다고 하는 이야기에서 자식을 잃은 슬픔이 마치 창자가 끊어지는 아픔이라고 비유된다.
지난 16일 진도 앞바다에서 발생한 침몰사고로 꽃같이 아리따운 우리의 아들, 딸들이 배에 갇혀 나오지 못하고 있다. 필자가 수십 년 전에 겪은 어떤 어머니의 피맺힌 절규가 매일매일 가슴에 사무치게 들리고 있다.
부처님의 <본생경(本生經)>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한 수행자의 품에 급히 쫓겨 들어온 비둘기를 아온 독수리는 자기가 추적해온 비둘기를 내어달라고 하나 수행자는 비둘기에게 대신 그 무게에 해당하는 자기의 살을 떼어 주겠다고 제안한다.
허벅지 한켠을 떼어도, 다른 허벅지를 떼어도 그 비둘기에 무게에 미치지 못하자 급기야 수행자는 자신의 온 살을 베어주기에 이르러 비둘기의 무게와 같아졌다. 재물이 있거나, 없거나 권력자이건, 아니건 그 생명이 가진 가치는 어느 것에도 비할 바 없는 고귀하고 존귀하다는 것을 일러주는 경문(經文)의 말씀이 아닐 수 없다.
오늘날 우리가 속한 세계의 한 쪽에서는 배가 기울자마자, 그 배의 모든 것을 책임진 선장을 비롯한 1등 항해사 등 선박직 선원이 수백 명의 고귀한 생명을 버려두고 탈출하였다. 세계 유수의 언론에서도 전세계 선원에 대한 수치스런 행위이고 모욕이라고 보도하고 있다.
보기에 따라서는 비둘기란 하찮은 생명을 살리기 위해 수행자는 온몸의 살을 떼어주어 자기의 생명까지 버린 전생의 석가모니 부처님의 거룩한 이타행은 아닐지라도 자기 책임 하에 운행된 배의 많은 생명을 도외시하고 바다에서 빠져나와 따스한 온돌바닥에서 지폐를 말리고 있었던 선장과 그 배의 선원들에게 ‘단장지애’의 아픔과 석가모니 부처님의 전생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또 말로만 ‘사랑하자’고 외치던 많은, 표시나지 않았던, 수많은 위선자들에게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줄 것을 권해 보고자 한다. 세월호 속에 갇힌 수백명의 생명이 무사히 생환하기를 관세음보살님께 간절히 기원해본다.
... 도권스님께서 불교신문 칼럼에 쓰신 글이 1년이 지난 오늘에도 하도 와닿아 조심스레 옮겨놓았다. http://m.ibulgyo.com/news/articleView.html?idxno=133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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