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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종교가 정치개입 못하는 나라는 공산국가뿐 -교회의 정치 참여에 대하여- 본문

깊은데로 가서 그물을 쳐 고기를 잡아라

종교가 정치개입 못하는 나라는 공산국가뿐 -교회의 정치 참여에 대하여-

하나 뿐인 마음 2014. 1. 7. 02:33
이 글은 대전교구 김유정 신부가 대전 도마동성당에서 행한 2013년 대림특강 내용을 정리해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기고한 글입니다. 종교의 정치참여에 대한 찬반양론이 있는 상황에서 사회교리에 입각해 이 문제를 성찰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 글은 6회에 걸쳐 게재됩니다. ―편집자


최근 천주교, 개신교, 불교, 원불교, 천도교 모두 시국선언을 했고, 목사님들은 금식기도까지 하셨습니다. 어떤 분들은 ‘종교가 자기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더 잘하라고 박수를 쳐 주고, 어떤 분들은 ‘정치에 관여하지 말고 가서 기도나 하라’고 합니다. 이분들의 말씀을 들어보면, ‘종교가 정치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자, 그럼 한번 여쭈어 보겠습니다. ‘종교가 정치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말은 성경의 어느 구절에 나오는 말씀인가요? 성경에 나오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가톨릭교회교리서나 교회문헌이나 교황님 말씀 중 하나인가요? 그렇지도 않습니다.

그렇다면 ‘종교가 정치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말은 대체 누가 한 말일까요? 이렇게 한번 생각해 보죠. 종교가 정치에 개입하지 않으면 제일 좋아할 사람들이 누구일까요? 정치인들이겠지요? 그래야 자기들 마음대로 정치를 할 수 있을 테니까요. 그럼 혹시 정치인들이 만든 말은 아닐까요?

정확히 누가 처음 저 말을 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아는 철학자 한 명과 정치인 한 명이 최근에 저 말을 한 것은 알고 있습니다. 마르크스와 레닌입니다. 마르크스는 ‘종교는 민중의 아편이다’라고 말을 했고, 레닌은 마르크스의 사상을 기초로 러시아에서 공산 혁명을 일으켜서 소련 즉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을 만들면서 ‘종교와 정치는 철저히 분리되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 최근 천주교 사제들은 교구별로 시국미사를 봉헌하며 국가기관의 불법 선거개입을 비판하고, 박근혜 대통령의 책임을 물었다. ⓒ한상봉 기자

그렇다면 왜 우리 가톨릭 신자가, 하느님 말씀을 자기 신조로 삼지 않고 정치인들이 만든 말을 신조로 삼고 있는 것일까요?

전 세계 240 여개 국가 중에 종교가 정치에 절대로 개입할 수 없는 나라가 딱 한 군데 있습니다. 어디일 것 같으세요? 북한입니다. 북한에는 미미하게나마 종교가 있지만, 정치에 절대로 개입을 할 수가 없습니다. 고모부도 하루아침에 숙청하는데, 종교인들 숙청하는 건 일도 아니겠지요. 그 외에 종교가 정치에 개입할 수 없는 나라들은 대개가 공산국가들입니다. 공산혁명 일으킨 사람들이 종교와 정치를 철저히 분리시켰으니까요.

요즈음 종교인들이 시국선언을 하면 ‘종북이다’, ‘빨갱이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분들이 계신데, 종교인들이 시국 선언을 할 수 없는 나라가 북한이고 빨갱이 나라입니다. 만일 종교인들의 시국선언이 금지된다면, 그게 뭐예요? 그게 종북입니다. 북한 따라가자는 거지요.

모세가 하느님 말씀을 듣고 이스라엘 백성을 약속의 땅으로 내 보내 달라고 누구한테 얘기했나요? 왕한테 얘기 했습니다. 이집트 왕인 파라오한테. 

"주님께서 아하즈에게 다시 이르셨다. "너는 주 너의 하느님께 너를 위하여 표징을 청하여라. 저 저승 깊은 곳에 있는 것이든, 저 위 높은 곳에 있는 것이든 아무 것이나 청하여라." 아하즈는 대답하였다. "저는 청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주님을 시험하지 않으렵니다. 그러자 이사야가 말하였다. "다윗 왕실은 잘 들으십시오! 여러분은 사람들을 성가시게 하는 것으로는 부족하여 나의 하느님까지 성가시게 하려 합니까? 그러므로 주님께서 몸소 여러분에게 표징을 주실 것입니다. 보십시오, 젊은 여인이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할 것입니다."(이사야 7,10-14)

여기서 이사야 예언자는 누구한테 따지고 있나요? 역시 왕이지요. 이스라엘 왕 아하즈입니다. 구약의 예언자들, 생각나는 대로 말씀해 보세요. 엘리야는 아합 왕과 대결했습니다. 나탄 예언자는 다윗 왕한테 가서 따졌습니다. 왜 부자가 가난한 사람 양 한 마리 뺐듯이 남의 부인을 뺐느냐고요. 세례자 요한도 헤로데 임금한테 가서 왜 율법을 어기냐고 말했다가 참수 당하잖아요.

엘리사, 아모스, 호세아, 예레미야, 에제키엘, 다니엘…… 예언자란 예언자는 모두 왕과 정부, 때로는 민족 전체에게 정의 문제를 가지고 뭐라고 한 거예요. 왜 율법과 하느님 계명 어기느냐고. 하느님 계명이 뭐죠? 십계명이죠? 그중에 하느님 안 믿는 사람들한테도 지키라고 말할 수 있는 계명이 뭐예요? “사람을 죽이지 마라. 거짓 증언을 하지 마라. 남의 재물을 탐내지 마라” 아녜요? 그런데 요즘 국가 기관들이 계속해서 거짓 증언을 하니까, 구약의 예언자 중 한 명이라도 살아 계시다면 말씀하시겠죠? 거짓 증언 하지마라고. 지금 교회가 그걸 하고 있는 거예요. 예언직을 수행하고 있는 겁니다. 세상에 복음을 선포하는 게 예언직인데, 세상이 복음의 가치를 크게 거스르는 일을 할 때, 하느님의 정의에 입각하여 볼 때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게 예언직입니다.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모세가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고 아론과 함께 가서 이스라엘 자손의 원로들을 불러 모았지요. 하느님께서 하신 말씀을 전했습니다. “나는 너희를 찾아가 너희가 이집트에서 겪고 있는 일을 살펴보았다. 그리하여 이집트에서 겪는 고난에서 너희를 끌어내어 ……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데리고 올라가기로 작정하였다.”(탈출 3,16-17) 그런데 이스라엘 원로들이 모세와 아론에게 이렇게 대들었다면 어떠했을까요? “하느님 만났다는 종교인들이 왜 정치에 관여하시오? 어서 축복이나 하고 가시오. 우리는 피라미드를 쌓으러 가야하오.” 그랬더라면 출애굽은 일어나지 않았겠죠. 영원히 노예 생활을 하고 있겠지요.(계속)
 

김유정 신부 (대전가톨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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