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04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깊이에의 강요

라이프 오브 파이 본문

엿보다

라이프 오브 파이

하나 뿐인 마음 2013. 5. 23. 03:21



라이프 오브 파이 (2013)

Life of Pi 
8.2
감독
이안
출연
수라즈 샤르마, 이르판 칸, 라프 스팰, 아딜 후세인, 타부
정보
어드벤처, 드라마 | 미국 | 126 분 | 2013-01-01


사람의 이름을 갖게 된 뱅갈 호랑이, 리차드 파커.

사냥꾼과 이름이 바뀌어버려, 사람의 이름을 갖게 되었다는 대사부터 나는 이 영화를 믿어버렸다, 아마 나는 이 영화를 무지 좋아하게 될거라고. 슬픈 예감이 틀린적이 없듯 나의 이유를 알 수 없는 끌림은 적중했다.


이야기를 어떻게 해석할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게다가 황홀한 장관을 펼쳐보여준 컴퓨터 그래픽 기술에 대해서 말해볼 생각도 전혀 없다. 다만 이 호랑이...



동물이 현실이었든 비유 상징이었든 간에 하이에나가 상대를 죽여버리는 행동으로 절대 권력의 자리를 차지하는 순간, 있는지도 몰랐던 호랑이가 튀어나온다. 그 조그만 보트 안에서 어떻게 그동안 소리 없이 가만히 있을 수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실은 모르지도 않는다...) 최고의 위기상황이 발생, 내가 더이상 물러설 데 없는 마지막 순간이 되었을 때 모습을 드러내는 호랑이. 그러나 그 호랑이는 나의 목숨을 호시탐탐 노린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그 호랑이에게 먹이를 던져주며 길들이려는 노력도 하면서 살려둔다. 아니 살려둔다기 보다 살리려, 함께 살아남으려 한다. 그 호랑이는 나의 목숨을 공격하기도 했지만 내가 살아남도록 나를 강하게 만들어주기도 한다. 호랑이가 물고기에 눈이 멀어 바다로 뛰어들고 다시 배에 오르지 못할 때 나는 호랑이를 못본척 내버려두고 배를 차지하는 선택을 하지 않는다. 호랑이와 나는 운명이 같다. 



나는 그 호랑이 덕에 한 순간도 긴장을 늦출 수 없다. 늘 배 위에 모습을 드러내는 건 아니다. 하이에나가 최고 권력을 잡은 순간 나타나 응징했던 호랑이는 갑판(이라고 하긴 좀 뭣하지만)위에 모습을 드러냈다가 터무니없이 좁은 그 공간으로 혼자 들어가 겉으로 모습을 감추기도 한다. 불러낼 수도 있고 나중엔 들여보낼 수도 있긴 했지만, 그 호랑이의 출입은 호랑이 마음. "가, 리차드 파거. 좀 들어가. 집으로 들어가, 혼자 있게 해줄게. 네 공간은 존중해 줄게, 약속해."라며 나는 호랑이를 다루어 보기도 하지만, 호랑이는 나와 동등한 존재이다. 호랑이와 같은 배에 타고 있을 수는 없지만 그 배를 떠나버릴 수도 없어 나와 배를 밧줄로 묶어 연결해 둔다. 






아름다운 심연 한가운데 난파된 보트를 타고 뱅갈 호랑이와 나는 살아남았다. 바다의 아름다움은 나를 위로하기도 하고 절망에 빠트리기도 하지만, 나와는 무관하게 스스로 존재한다. 나는 바다 위에 떠 있기에 바다의 일부이기도 하고 바다와 별개의 존재이기도 하다. 나는 살아남았으며 살아 남기 위해 호랑이와 함께 존재하는 법을 터득해야 했다. 뱅갈 호랑이는 드러나지 않은 나의 민낯이며 통제되지 않길 바라는 나의 본능이다. 다듬어지지 않은 나의 가능성이며, 나를 살게 하는 내적 동력이다. 내가 살아가는 나의 삶도 이 바다처럼 한없이 아름다우면서도 한없이 나를 위협한다. 


호랑이를 잡는 사냥꾼(나)과 이름이 바뀌어버려 사냥꾼의 이름으로 불리는 호랑이(본능? 무의식 자아?). 거칠고 어머어마한 힘을 지녔으며 나를 죽게도 하고 살게도 하는 존재. 

 

바다의 의미, 미어캣 섬, 미어캣과 호랑이의 관계, 밤과 낮, 섬, 어느새 뭍에 다다른 배,  낮엔 많은 걸 주지만 밤이 되면 모두 빼앗아가는 섬, 수도원의 중정처럼 섬 한가운데 자리한 못, 잠심, 바닥 가장 깊은 곳으로 내려가는 혹은 가라앉는 상상을 하며 기도수행을 했던 경험을 생각나게 하던 장면들, 입이 무시무시하게 생긴 물고기, 비가 내리는 게 느껴지니... 등등 깊이 느껴볼만한 것들이 많았지만, 다 적을 수 없어 기억에만 남기기로 한다.

배 위에서 나란히 같은 방향으로 누워있던 장면이 인상깊었는데 사진을 찾을 수 없는 관계로 마지막 순간 스스로 나를 떠나 더 큰 곳으로 나아가는 사진으로 감상 마무리.

'엿보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철의 여인  (0) 2013.08.08
지슬  (0) 2013.06.12
오월애  (0) 2013.05.20
노리개  (0) 2013.05.07
신세계  (0) 2013.05.03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