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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루카의 우물/루카 1장 (14)
깊이에의 강요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 하느님의 뜻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응답이 이어질 때 완성되었다. 하느님의 뜻은 인간의 응답이 필요하고, 인간의 의지는 하느님의 은총이 필요한 법.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 믿기에 사는 삶인데도, 믿는 것이 제일 어렵다. 그래서 떠올린 황새바위 성모님. 가슴을 스스로 내려누르며 가야하는 삶.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루카 1,45) 예수님을 잉태한 후 자신을 찾아 온 성모님께 세례자 요한의 어머니 엘리사벳이 한 말. “행복하십니다.” 같은 길을 조금 앞서 가고 있는 사람의 말이다. 오랜 세월 아이를 낳지 못하고 살아 온 여인이 그간 받았을 설움과 냉대, 결혼도 하기 전에 잉태하여 아이를 가지게 된 여인이 겪어야 할 설움과 냉대. 여인으로서, 아이를 뒤늦게 가졌든 일찍 가졌든 세상이 당연하다고 규정지은 순서를 거슬러 어머니가 된 이들이 겪어야 할 모든 것들 앞에서, 조금 먼저 겪은 사람의 말. 예수님 못지 않게 요한 역시 부모의 품을 떠나, 주님의 길을 마련하기 위해 메마른 골짜기 같은 삶을 살다가 죽임을 당했다. 이런 아들을 둔 어머니의 삶은 세상의 ..
"두려워하지 마라. 즈카르야야, 너의 청원이 받아들여졌다." (13절) 그렇게 수도 없이 읽었으면서도 마치 처음 본 문장처럼 문득 가슴에 와 닿는 말씀이 있다. 내게 오늘은 이 말씀이었다. 성경에 쓰인 글 만으로 모든 것을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성경 만으로는 즈카르야가 하느님께 청한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이는, 우리도 알 수 없지만 어쩌면 즈카르야 자신도 하느님께 청원한 적이 있었는지, 그 청원이 무엇인지 알지 못할 지도 모른다는 뜻도 된다. 게다가 그가 성소에 들어가 분향을 하는 이유 역시 사제 직무를 수행할 당번으로 제비 뽑기에 당첨되었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지향을 품고 향을 올린 것이 아니라 공적 신분으로 그곳에 들어갔던 것. 그런데 그곳에서 천사를 만났고, '너의 청원이 받아들여졌다'는 ..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니,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기 때문입니다.(루카 1,46-48) 내 가장 외롭고 비참한 날에도 내 안의 그분은 변함 없이 나를 가장 사랑하시니 이에 힘입어 나도 그런 나를 또 다시 사랑할 수 있음이다. 불안하고 두려운 때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기뻐 뛸 수 있음은 그분께서 다름 아닌 나의 비천함을 굽어 보시기 때문이다. 애써 감춰보려 했던 가련한 내 껍데기 뿐만 아니라 낡고 초라한 내 민낯마저 그저 자비로이 바라보시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