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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2025/03/03 (4)
깊이에의 강요

조문영. 글항아리. '한국과 중국을 오가며 다양한 사회문제를 연구해 온 인류학자인 저자가 노동자, 청년, 노인, 여성, 비인간 등을 주제로 비판적 성찰을 담았다.'(한국일보 책소개)는 기사를 보자마자 너무 읽고 싶었던 책이다. 보탤 말이 없기도 하지만 이라는 제목만으로도 충분히 이 책을 짐작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사회에서 조금은 비켜서 있는 나에게 '혐중'은 아직도 낯설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사조(라고 해도 될까)인데 저자가 바로잡아주는, 중국에 대한 혐오나 마찬가지인 한국인의 선입견도 매우 읽을 만하다. p.58"페미니스트 학자 세라 아메드에 따르면, 우리가 어떤 사람들을 두려워하는 것은 그들이 원래부터 두려운 존재여서가 아니다. "공포의 '기호들'(사인)이 도처에 유포되면서 (예컨대) 흑인..

정세랑. 문학동네. 불꽃.1) 타는 불에서 일어나는 붉은빛을 띤 기운.2) 금속이나 돌 따위의 딱딱한 물체가 부딪칠 때 생기는 불빛.3) 스파크(방전할 때 일어나는 불빛) 설자은이 쫓은 것은 불 자체가 아니라 불이 일으킨 기운, 무언가가 부딪쳐 생긴 빛, 흘러나올 때 일어나는 빛, 불꽃이었다. 설자은은 누군가를 향한 사랑이, 누군가가 주었던 모욕이, 앗긴 것 혹은 앗은 것이, 없애서라고 감추려는 악의와 끝내 놓지 못한 선의가 일으키는 마음을 쫓았다. 잡기 위해, 혹은 만나기 위해, 때론 보내기 위해... "자은을 위해주었던 사람, 자은이 따르고 싶었던 사람, 처음부터 어쩐지 좋았던 사람이 한편으로는 겁탈자의 무리를 이끌 수도 있다는 것을 자은은 받아들였다. 어그러짐을, 오염을, 곤죽이 되고 범벅이 된 온..

정보라. 래빗홀. 섬찟하기도 하고 뭉클하기도 한 정보라 작가의 이야기들. 마땅히 그랬어야 할 이야기가 아직은 SF 소설에서나 해피엔딩이구나 싶다가도 이 이야기들이 끝내 닿는 곳은 우리들의 현실일 것이라는 믿음이 생기는 책. 그리고 이 '우리'의 범위가 한없이 확장되는 정보라 작가의 세계가 너무 사랑스럽다.

스티븐 레비츠키, 대니얼 지블랫 지음. 박세연 옮김. 어크로스. 12.3은 이후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남을지 아직 마음이 놓이지 않아 답답한 마음에 를 읽지 않고 이 책부터 집어 들었다. 미국 정치 역사를 주요 골자로 해서 민주주의가 어떻게 한계에 도달하며 어떻게 독재 혹은 전제주의에 의해 붕괴되는지를 보여주는 책. 두 번째 챕터였던 '독재의 평범성'에 나오는, 민주주의를 부정하다 못해 짓밟는 전 세계 모든 사례가 근래와 현재에 걸쳐 우리나라에서 한꺼번에 일어나고 있다 싶어 숨 쉴 때마다 노여움이 한숨에 배어 나오는 것 같았다. 독재자가 국가를. 극단적 성직자가 교회를, 독단적 경영자가 회사를, 독선적 부모가 가정을... 정치판에서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가면조차 쓸 생각이 없는 사람들은 이제 도처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