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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마태 2,1-12 본문
2005년 1월 2일 주님 공현 대축일
마태오 복음 2,1-12
언니, 잘 지내지? 오늘이 내가 약속한 묵상 편지의 제1호다.
오늘은 주님 공현 대축일 복음인데, 공현이라는 말은 공적으로 드러났다는 뜻이야. 교회는 예수님 성탄이 지나고 돌아오는 첫 번째 주일에 이 축일을 지내지. 동방박사의 방문으로 인해 예수님이 공적으로 세상에 드러나심을 기리면서...
우선 마태오 복음 2,1-12를 자세히 읽어볼까? (나는 분도출판사에서 나온 200주년 기념 성서를 본다. 번역이 공동번역 보다는 좀더 원서에 가까워서 우리는 주로 이것을 보거든)
조용한 곳에서 넉넉한 시간을 두고(전화를 끌 수 있으면 그것도 좋겠다)
성서를 읽기 전에 우선 성령께 드리는 기도를 바치곤 하는데, 여러 가지 방법이 있거든. 나는 내가 주로 바치는 이 기도를 언니한테 일단 소개할게. (언니 마음대로 해도 된다) 성서의 말씀이 내 안에서 하느님의 뜻대로 이루어지길, 시끄러운 마음과 이미 지닌 선입견과 하느님에 대한 개인적인 기대감 등으로 순수하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말씀이 내 뜻대로가 아니라 하느님 뜻대로 내 안에서 이루어지고, 그로인해 내 삶이 변화되어 회개의 길을 걷고 하느님을 더 잘 알아 뵐 수 있기를 빌며.. 또한 기도할 줄 모르는 나를 위해 성령께서 내 안에서 기도해 주시기를 빌며...
성령께 드리는 기도
성령이여 임하시어
내 안에 있는 긴장을 거룩한 편안함으로
내 안에 있는 혼란을 성스러운 조용함으로
내 안에 있는 불안을 차분한 신뢰로
내 안에 있는 두려움을 강한 믿음으로
내 안에 있는 씁쓸함을 은총의 달콤함으로
내 안에 있는 어두움을 부드러운 빛으로
내 안에 있는 냉랭함을 사랑의 따뜻함으로
내 안에 있는 겨울을 주님의 봄으로 바꾸어 주소서.
나의 굽은 것을 바르게 하시고
텅 빈 것을 채우시며
내 교만의 뾰족함을 완만케 하시고
내 안에 사랑의 불을 놓으시며
내 욕심의 불꽃을 꺼주시고
주님이 보시듯이 내 자신을 보게 하시며
주님 안에서 그리고 주님이 약속하신 대로
다른 이들 안에서 주님을 볼 수 있게 하시고
“복되도다,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하느님을 뵙게 되리니”
라고 말씀하신 바가 나에게서 이루어지게 하소서. 아멘
우선 차분한 마음으로 몇 번이고 이 text를 읽어내려가는게 중요해. 사심 없이, 판단하거나 미리 앞질러
묵상거리를 일부러 만들지 않고(무엇보다 그동안 듣고 읽었던 여러 가지 다른 이들의 묵상이나, 특히 그전에 내가 했던 묵상에서 방해받지 않도록) 오로지 지금 이 순간에 머물면서 읽는 것이 중요해. 읽는다기 보다는 차라리 듣는다는 마음가짐으로. 읽었나?
그럼 이제 이 text의 장소와 등장인물, 시간적 배경, 누가 말을 하고 있는지, 인물 호칭의 종류와 변화, 등장인물들의 행위, 반복되는 단어, 특히 눈에 들어오거나 왠지 마음에 남는 구절이나 단어들을 살펴볼 것. 혹시 된다면 다른 성서에 나오는 구절들이 떠오르면 함께 생각해 봐도 좋아(이런걸 미드라쉬라고 한대). 일일이 쓸 수 없어서 이것은 언니한테 맡겨야겠다. 언니 스스로 한번 해봐. 나는 매일 그날 성서를 적어서(이게 무슨 말인지 아나? 가톨릭은 매일의 전례가 정해져 있거든. 혹시 모른다면 바오로딸 서점에 가서 전례력부터 하나 마련해야 겠다. 그날그날의 미사 복음과 독서를 읽고 묵상하는게 제일 좋아. 인터넷에 들어가도 아마 알 수 있을 거야. 묵상글을 보내주는 사이트도 있다던데, 그건 내가 잘 모르겠다. 가톨릭 관련 사이트에 한번 가볼래? 가톨릭 홈링크 등등
그럼 이제 조금씩 text를 나누어서 봐야겠다. 너무 머리를 써서 성서를 읽는 것도 좋지 않지만, 적당한 선에서 머리와 가슴이 함께 움직이도록 노력해 볼래? 처음엔 머리가 많이 돌아가겠지만,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가슴이 움직이게 될 거야.
언니가 와닿는 부분이 있었다면 되풀이해서 읽어가며 마음에 새기고 그 부분에 머무르면서 계속 기도해봐. 오늘은 내가 묵상한 부분을 얘기할게. 주로 이야기를 단락별로 나누어 가면서 자세하게 읽고 관찰하는 게 필요한데, 아직은 시작이니까 묵상만 할게.
점성가. 멀리 동방에서 점성가들이 왔다. 그것도 별 하나만을 보고서. 그들은 평생을 별을 연구하면서 살아간 사람들. 별은 그들에게 일상이나 다름 없었고, 인생이었겠지. 그들은 현자(영어 성서를 보면 wise men이라고 되어있어)라고 불리며 다른 이들의 칭송을 받았고 과거와 미래를 이해하는 지도자였겠지? 그들을 동방박사라고 하는 건, 지식층이었다는 말이기도 하고. 하여간 그들은 王이나 다름없었어. 그런 그들이 별을 보고 먼 길을 떠난거야. 별(그분의 별이라고 믿었지)은 그들을 예루살렘으로 인도했고, 그들은 곧바로 왕실로 들어갔지. 왜냐면 왕으로 나신 분을 찾았으니까. 높은 귀족계층의 그들은 왕실에서는 그분을 만날 수 없었지. 오히려 하늘을 찌를듯한 위상을 떨치던 헤로데를 혼란스럽게 만들었고. 자신만이 유일자여야 한다고 믿는 헤로데에게 점성가들의 말은(2절에 보면 ‘나신 분’이라고 과거형으로 이미 이루어졌음을 알려줌) 아마 최대의 위협이었을 거야. 온 예루살렘이 술렁거릴 정도로 그건 위험천만한 일이었지. 정권을 뒤집어야 하니까. 하여튼 헤로데는 급한 마음에 대제관과 율사들을 불러 모았지. 참 희안하지. 하느님을 믿지 않는 그가 의견을 구할 때는 종교 지도자들을 불렀으니까. 그는 어디서 태어날 것인지가 궁금했나봐. 자신의 영토 안에 태어나면 안되니깐. 여기서 헤로데는 점성가들과 달리 태어나실 곳(4절 미래형)이라고 하면서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기를 바라는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는 것 같아. 하느님 나라가 이미 이 땅에 이루어졌다고 여기며 사는 사람들과 아직 멀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차이.. 언니는 어때? 마음에 하느님 나라가 와 있는가? 사실, 우리가 어떻게 믿고 있건 간에 하느님 나라는 와 있어. 우리가 믿지 않을 뿐이지. 헤로데를 봐. 그리스도는 이미 세상 구원을 위해 태어나셨는데, 그는 믿을 수 없었던 거야.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고 자신의 권력을 절대로 내놓고 싶지 않았고. 우리도 그렇지. 그분은 의당 계시건만 그분을 믿지 않는 이들도 많고 믿는다고 하면서도 믿지 않는 자들보다 더하게 살기도 하지. 하여튼 넘어가서, 종교 지도자들이 내놓은 대답이 걸작이야. 예언서를 들먹이며(미가 5,1.3) 그들은 그야말로 정답을 얘기했지. 하지만, 마음이 씁쓸하다. 그들은 도대체 뭘 하고 있는거지? 그렇게 고대하던 그분이 태어나심을 누구보다 잘 아는 그들이, 왜 점성가들처럼 인생을 걸고 그분께 경배하러 나서지 않는걸까? 그들이 도대체 하느님을 믿긴 믿는걸까? 하지만 내 안에서도 발견되는 일이야. 당장 눈앞에 고통에만 집중하고 그분의 역사하심을 믿지 못하는 것. 알면서도 행하지 않는 것. 스스로 사랑을 저버리는 행위들. 하느님 보다 왕실(권력과 돈, 연안함, 인간적인 인정...을 받는 곳)에 더 가까이 머물 때가 내겐 왜 없을까. 헤로데는 다시 점성가들을 몰래 불렀어. 이번에는 ‘때’를 알아보기 위해서. 몰래 불렀다는 건 그 지도자들마저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만방에 알려야할 기쁜 소식이라면 모두가 알도록 했을텐데, 헤로데는 그러지 못했지. 딴 마음이 있었던 거야. 그들은 파견하며 그는 거짓말까지 하게 되고. 경배할 거라는 약속은 애초에 지킬 마음이 없었잖아. 그는 자신을 위협한다고 여긴 그리스도를 죽이려는 마음을 가졌었으니까(마태 2,16-18 참조). 자신의 어두운 부분을 밝히는 존재를 없애려고 하는 것. 나의 어두운 부분이 드러날라치면 자꾸 숨기려 하고, 오히려 피하고. 세상 사람들은 그들을 없애려는 시도를 실제로 하기도 하지. 나 역시... 내것을 빼앗기기 싫어하는 마음이 있고, 내가 누리던 것을 포기하는게 쉽지 않아. 하지만, 하느님 앞에서 내가 해야할 행위는 헤로데와는 정반대여야겠지? 예수님을 모시는 것이 내게 도전이 되는지, 위협이 되는건 아닌지... 내가 좋아하는 노래 중에 이런 가사가 있다. ‘당신을 몰랐더라면 더욱 편했을지도 모르는 그런 세상이지만, 당신을 알게 됨으로 얻어진 자유 평화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네~’ 가끔은 예수님이 부담스러울 때가 있지. 그러나 그분 때문에 내가 자유로워지는 건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이 얘기는 다음으로 미루고.. 다시 점성가로 돌아가서.. 언니, 한번 상상해 볼래? 평생을 별 하나만 바라보고 별 하나만 연구하며 살다가 드디어 그 별이 전하는 메시지를 알아듣고 그동안 이루어놓은 많은 것(명성, 부, 지혜...)을 그대로 둔채 멀길을 떠난 그들이 멈추어 선 순간. 어땠을까? 10절에 보면 반가워 기쁨에 넘쳤다고 되어 있는데... 그동안의 여행길이 순조롭지 만은 않았을 테고, 위협도 있었겠지? 포기하고 싶은 마음도? 되돌아가서 그동안 누리는 안락한 생활로 되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왜 없었을까? 놀라운 건 그 다음이야. 평생을 바쳐 온 길을 떠나 드디어 별이 멈춘 그 집으로 들어갔는데, 그들이 볼 수 있었던 것은 화려한 왕의 모습이 아니라 그저 한 아기였어. 연약한 아기. 아무것도 혼자서 할 수 없고 세상을 구원하기는커녕 자신에게 닥치는 조그만 위험조차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아기. 실망하지는 않았을까? 그들이 기대한 것이 그 아기는 아니었겠지? 그러나 그들은 그 초라한 집에서 태어난 연약한 한 아기를 보고 엎으려 절하고 그들이 준비한 값비싼(돈으로 비싸다라기 보다 그들로서 최선을 다한 봉헌물이겠지) 보물을 드리는 모습... 어쩌면 순수한 마음으로 별만 바라보고 별을 연구한 그들에게 (그들은 몰랐겠지만) 하느님은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 보이시며 준비를 해 주신건지도 모르겠다. 내가 이렇게 될지 몰랐지만, 막상 막연히 상상만 했던 어느 순간이 다가오자 나도 모르게 용기를 내어 성큼 이 길로 들어선 것은 나의 준비가 아니라 바로 그분의 준비였어. 어쩌면 평생 무엇을 연구하든 제대로만 연구한다면 (이 세상 모든 것이 하느님의 섭리 안에 이루어지는 것이니까) 하느님의 뜻을 자신도 모르게 발견하게 될 거야. 별 전문가가 되기를 원했다고 하더라도 순수한 마음으로 별을 연구한 사람에게는 별에 심어져 있는 하느님의 섭리를 발견하게 되고 결국은 하느님의 뜻대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거지. 이 세상 모든 게 그럴거야. 신앙생활이란 것도 하면 할수록 (제대로라는 전제가 있어야겠지만) 모든 것에서 아주 작은 일상에서부터 인생의 곳곳에서 만나게 되는 굵직굵직한 사건의 경험에서도 하느님의 섭리를 발견하게 되지. 세상의 눈으로 보면 엄청난 지위를 가진 점성가가 한 일이 고작 어린 아기 앞에 평생의 예물을 바친 것처럼 바보같은 일도 없었겠지만, 신앙의 눈으로 보면 그제서야 하느님을 뵙게 된 인생 최고의 순간일 수도 있는 법. 내 인생의 성공(?)은 바로 하느님을 제대로 만나뵙는 거겠지? 예수님 마음처럼 한생을 살고자 청한 이름도 聖心이니... 여기까지의 모습도 놀라운데 12절은 그들을 더 위대하게 만드는 것 같애. 별을 따라 먼 길을 걸어서 겨우 아기의 모습을 보고 그동안 소중하게 가져왔던 자신들의 전재산이나 다름없는 것들을 초라한 아기에게 몽땅 바치고 훨훨 털고 다시 길을 떠나는 모습. 명예도 주어지지 않았고 선물에 대한 어떠한 답도 받지 못했고, 이후의 삶에 있어서 어떠한 보장도 받지 못한채 떠나는 그들이건만 마음은 어땠을까? 달랑 가방 몇 개 들고 수녀원 집에 들어서던 내 기분과 비슷하지 않았을까? 그동안 애지중지 했던 물건들도 다 나눠주고 애착했던 모든 일들도 인수인계를 마치고 집도 친구들도 모두모두 세상에 남겨두고 훨훨 가벼운 마음으로 이곳에 오던 그날. 내 뒷모습을 보고 어쩌면 사람들이 느꼈던 마음이 지금 내가 점성가들을 상상하며 떠올리는 마음과 비슷할 거야. 언니, 세상을 이렇게 훨훨 날아가고 싶다. 가볍게 가볍게 하느님만 바라보고 살고 싶다. 인생의 진짜 의미를 깨닫고 싶다. 그들은 헤로데에게 가지 말라는 지시를 받고 다른 길로 해서 자기네 고장으로 떠난다. 제대로 하느님을 만나 뵙고 나서 일어나는 일은 겉으로는 큰 변화가 없는 듯하다.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니까. 하지만 이제 그들의 일상에는 보이지 않는 변화가 있지. 바로 하느님의 마음. 하느님의 마음으로 세상을 다시 살아가는 거니까. 언니도 이런 마음을 알겠지? 그들은 생전 처음으로 걸아왔던 그 길을 두고 또다시 새로운 길을 걸어서 일상으로 돌아간다. 두렵고 떨리는 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 마음 깊숙이 자리잡은 신뢰와 평화가 그들을 인도하니까. 눈으로 보던 그 별이 이제 가슴에 자리잡았을테지. 돌아서 돌아서 다시 자기 자리를 찾아가고 삶을 이어가는 것. 그러나 그전과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그전보다 비교할 수 없을만큼 넓고 깊은 마음으로 사람들을 대하며.. 하느님 만이 주실 수 있는 평화 속에서... 언니 우리 이렇게 살자. 이렇게 살아가라고 예수님께서 태어나셨다. 이번 주 묵상은 끝! 너무 오래 끌어서. 이번호는 우편이 아니라 할 수 없이 메일로 보낸다. 언니, 안녕? 곧 볼 수 있을려냐...눈치를 보고 있다. 겨울이 지나기 전에 가야할텐데. 성탄 과자도 주고 싶고, 선물로 받은 성모님 그림도 주고 싶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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