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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마태 10,37-42 합당하게 사랑하는 것 (가해 연중 제13주일 ) 본문

이번 주 복음에는 ‘합당하지(ἄξιος) 않다’는 말이 세 번 나옵니다. 악시오스는 ‘균형잡힌, ~만큼 무거운, 가치 있는, 적절한, 적합한’이란 뜻인데요, 성경은 아버지나 어머니를 예수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 아들이나 딸을 예수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 제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예수님께 ‘합당하지’ 않다고 합니다. 언뜻 들으면 쉽지도 않고 받아들이기도 어렵습니다. 반대로 행동하면 합당한, 균형잡힌, 가치 있는 것이 될까요? 합당하게 사랑하는 것은 반대로 즉, 더 사랑하거나 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 자체를 존재 자체로서 사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뒤이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언자를 예언자라서 받아들이는 이는 예언자가 받는 상을 받을 것이고, 의인을 의인이라서 받아들이는 이는 의인이 받는 상을 받을 것이다.”(마태 10,41) 예언자를 예언자로서, 의인을 의인으로서 받아들이는 것. 그 사람을 나의 판단이나 욕심으로 규정하지 않고 '그 사람' 자체로 받아들이는 것. 이것이 ‘합당한’ 일입니다. 예수님을 예수님으로, 부모는 부모로, 자식은 자식으로 사랑하는 것 말입니다. 십자가를 질 때는 남의 것이 아니라 나의 십자가로, 십자가를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내 몸으로 짊어지는 것, 곁에 두는 것이 아니라 내 몸의 일부로라도 감당하는 것이 ‘합당한’ 일입니다. 있는 그대로, 존재 자체로 대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과소평가도 과대평가도 아닌, 존재에 합당한 예의와 존중으로 말입니다. 사제는 더도 말도 덜도 말고 사제로, 수도자는 수도자로, 동료 신자는 신자로, 이웃은 이웃으로, 형제는 형제로, 가족은 가족으로...
사실 ‘합당하다’는 단어를 며칠 전부터 곰곰이 생각할 일이 있었습니다. 미사 전 이미 사람들이 모여 있는 성전에서 노래 연습을 하시려는 분께 앞으로는 연습실에서 미리 연습을 하고 오셨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렸더니 "다른 사람들도 떠드는 데 나도 큰소리를 내어도 되지 않느냐?"는 질문이 돌아왔습니다. 그 질문 아닌 질문을 받고 ‘합당하다’는 말을 생각했습니다. 성전은 미사가 봉헌되지 않는 시간에도 성전입니다. 성전을 휴대폰이나 들여다보는 휴게실로, 노래나 반주 연습실로, 사람들과 만나 근황을 얘기하는 카페로 만들지 말아 주세요. 성전을 성전으로, 거룩한 하느님의 집이 되도록 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합당한 의무’가 아닐까요?
하나만 덧붙이자면, 예수님을 대하는 솔직한 태도가 나의 진짜 신앙이듯, 타인을 대하는 태도는 '나의' 됨됨이입니다. 내가 누군가를 비난하고 험담하면 그 사람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나의 인격을 드러낼 뿐입니다. 상대에 대한 나의 태도는 상대에 따라 달라지는 반응이 아니라 내 존재 자체가 드러나는 내 고유한 태도여야 합니다. 그것이 나의 합당한 태도이고 합당하게 사랑하며 사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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