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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마태 28,16-20 예수님이 올라가신 그 곳으로(가해 주님 승천 대축일-홍보주일- 레지오 훈화) 본문

마태오의 우물/마태오 28장

마태 28,16-20 예수님이 올라가신 그 곳으로(가해 주님 승천 대축일-홍보주일- 레지오 훈화)

하나 뿐인 마음 2023. 5. 19. 10:57
Julia Stankova

  이번 주는 주님 승천 대축일로,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40일째 되는 날 하늘로 올라가셨음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40일이 되려면 부활 6주간 목요일에 지내야 하지만 한국은 주님 승천 대축일이 의무축일이 아니기에 모든 이들이 미사에 참례할 수 있도록 부활 제7주일로 옮겨 지냅니다.) 이번 주 복음에는 예수님의 승천이야기가 나올까요? 사실 예수님의 승천을 직접적으로 다룬 장면은 성경에 2번(루카 24,51-53; 사도 1,9-10)만 나옵니다. 우리는 전통적으로 루카 복음으로 미루어 짐작하여 이 복음을 산에서 승천하시는 장면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이번 주(성령강림 전 주일)는 홍보주일이기도 합니다. 올해 교황님의 홍보주일 담화의 주제는 “진심을 다해 소통에 나서고 적대적인 소통 방식을 절대 추구하지 말아야 한다.”입니다. 꼭 언론 뿐만이 아니라 우리들의 소통에는 진심이 당연하고, 소통 방식의 정화도 반드시 필요합니다. 나아가 교황님은 “진실을 조작하고 악용하는 허위 정보에 기초해 무관심과 분노로 치우치곤 하는” 이 세상에서 “때로는 불편하더라도” 진리를 선포하는 일이 특히 중요하다고 말씀하시며 다른 이들에게 선을 행할 수 있고 심지어 “가장 완고한 마음”까지도 건드릴 수 있는 표현을 쓰라고까지 요청하셨습니다. 요즘은 모두가 여유가 없어서인지 이해하고 포용하는 대화가 쉽지 않습니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반응은 공격이나 외면 등 극단으로 표출되고, 나의 뜻이나 내가 속한 공동체의 잣대에 들어오지 않으면 적으로 간주하는 일도 흔한 일입니다.  전하려는 내용이 아무리 좋다고 하더라도 그 표현 방식이 혐오를 담고 있고 폭력이나 저주에 가깝다면 전하려는 내용 자체도 이미 변질되었을 것입니다. 저주로 사랑을 전할 수는 없으니까요. 반대로, 아무리 아름답고 매끄러운 언어로 말한다 해도 그 내용이 이기적인 판단이거나 상대를 깎아내리는 말이라면 선입견이요 거칠고 무례한 비난일 뿐이지 않을까요. 상대가 선을 행할 수 있도록 표현하라는 교황님 말씀이 제 오랜 말습관을 다시 들여다보게 했고, 부끄럽지만 참 고맙습니다. 올해는 성령의 열매 중 온유를 청하며 기도해야겠다는 결심도 해봅니다.
 
  마지막으로 교황님의 이 담화에 비추어 신앙인으로서의 우리 마음가짐(진심)과 서로간의 대화(적대적이지 않은 소통)에 관해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18-20)을 묵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권한을 가진 자의 위엄 있는 책임보다 권한을 행사하는 힘에 관심을 쏟지는 않는지... 예수님은 돌을 빵으로 바꾸지 '못하신' 것이 아니었지요. 
-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모든 민족들이 하느님의 제자가 되어야 하는데도 우리는 정작 사람을 가르고 구분하며 내 편, 네 편에 따라 마음과 행동이 달라지지는 않는지...
-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삼위일체의 이름으로 행해져야할 모든 교회의 일들을 내 편의대로 이해하고 적용하지는 않는지...
-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치고 지켜야 함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가르침마저 취사선택하며 살지는 않는지... 우리는 용서하라는 말씀은 잘 잊고 주겠다는 말씀을 잘 기억합니다.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는 빠트리고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만 붙들고 싶어합니다.
-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매순간 현존 속에 살아가기보다, 공기를 대하듯 하느님 존재를 망각하며 살거나 필요할 때만 상기하고, 늘 가까이 있기에 무관심 혹은 쉽게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이렇게 살아가고자 매일 노력할 때 그 옛날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예수님이 올라가신 그 곳으로, 우리들도 당도할 수 있지 않을까요. 내가 믿는 신앙과 내가 살아가는 현실 속에서의 신앙 생활이 조화를 이루도록 기도하고 실천하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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