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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허락 없는 외출 본문
휘리 그림책. 오후의소묘.
조금 울었다. 인형을 꼬옥 붙든 채 눈을 감은 아이. 휘몰아치듯 아이를 감싸는 것들이 아무리 아름답고 눈부시다 해도 아이는 홀로이다. 인형과 함께이나 홀로인 아이. 그래서 울었다. 자그마한 아이가 문을 뒤로 한 채 나아가야 할 세상을 마주했을 때 조금 더 울어주고 싶었다, 아이를 위해. 세상에 홀로 남았을 때의 나를 떠올리며, 홀로 병고 중에 십자가를 향해 걷고 있는 내 형제 수녀를 떠올리며.
나와 한날 한시에 수도생활을 시작한 나의 형제는 멀고 가난한 나라에 선교를 갔는데 며칠 전 확진 소식을 들었다. 벌써 폐렴까지 왔는데 신장도 좋지 않다고 했다. 기도 중에 형제를 향해 중얼거렸었다, 형제여, 예수님 발치까지 갔구나... 더 멀리 가지 말고 이제 그만 되돌아오라고 말하고 싶지만 위수술에 신장 투석까지 해야한다는 소식. 형제여 부디 더 나아가지 말고 조금만 기다리시게. 십자가 아래에서 그냥 무릎 꿇고 쉬시게, 조금만 더 쉬시게. 홀로 그렇게 십자가를 향해 걷지 말고 조금만 더 게으름을 부려보시게. 우리의 허락 없이 집을 떠나지 마시게...
그러니 우리의 시작이셨던 주님,
그리고 우리의 마침이실 주님,
차마 당신 뜻대로 하시라는 기도를
아직 바치지 못하는 저를
위로해 주소서.
오늘은 나의 형제 생각에 조금 울면서 그림을 넘겼지만 언젠가 울지 않고 이 책을 펼칠 날도 있겠지.
이 그림 앞에선 마음 놓고 울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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