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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이상한 정상 가족 본문

김희경 지음. 동아시아.
하나는 온전히 하나이지만 결코 하나에서 끝나지 않는다. 사람 뿐이랴. 사물도 다른 사물과, 사람과, 추억과, 시대와, 의미와 정신과... 관계를 맺는다. 죄도 그렇고 의식도 그렇고 폭력도 그렇고 선행도 사랑도 기도도 그렇다. 그런데도 우리는 참 쉽게 선을 긋고, 개개인의 생각마저 규정하고 강요한다.
생각해봐야 하는 문제를 너무 많이 던져주는 책이었다. 아이는 부모가 키워야 하고 특히 유아기는 친모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걸 배웠지만 수녀가 된 후 내가 만난 나의 친구들(솔직하게 이야기를 해줄 수 있는 이들)은 아기가 소중한 만큼 그 아이의 엄마도 소중한 존재임을 일깨워주었다. 24시간 아이를 어르며 사랑을 주는 엄마의 존재는 아기에게 참 중요하지만, 엄마 역시 한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해 행복을 누리고 무언가를 성취하는 것이 필요하며 한쪽의 일방적 포기를 수년간 강제한다는 것은 결코 모두를 위한 방법이 아니란 걸 말이다. 또한 그 규정이 얼마나 야만적이고 폭력적이었는지 말이다.
가족도 마찬가지이다. 친엄마가 있고 친아빠가 있어야 가장 이상적이고 완벽하다고 배웠기에 그렇게 생각하며 살아왔지만 이미 내가 알고 있는 또 다른 형태의 행복하고 따뜻한 가족이 있었고 규정된 형태가 아니라는 이유로 불필요하고 부당한 시선과 대접을 받아야 했던 그들의 이야기에 마음 아파했었다.
이 책은, 그동안 내가 학습한 가족(주로 부부를 중심으로 한, 친족 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집단)이라는 가부장적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식구(한집에서 함께 살면서 끼니를 같이하는 사람)로 의미 확장을 하도록 이끌었다. 예수도 자신에게 다가오기 보다 밖에 서서 당신을 불러내려던 어머니와 형제들을 두고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라고 하시지 않았나.
책을 읽으며 나도 모르게 그동안 아이를 온전한 하나의 존재로 대하지 못했음을 반성했다. 아이를 대하는 마음과 태도를 살펴보며 내가 그동안 사람을, 사회를 어떻게 생각했는지도 돌아봤다. 막연히 이렇다, 이래야한다 라고 말하지 않고 연구하고 조사한 결과를 하나하나 보여주며 논리적으로 설득하는 저자의 노고에 감사한다.
p.26 ~ p.27
"이 세상에서 벌어지는 대부분의 아동학대는 극히 정상적인 사람들의 고의적 폭력이라기보다 보통 사람들의 우발적 체벌이 통제력을 잃고 치달은 결과라는 것이 그간 숱한 분석과 연구를 통해 확인된 사실이다."
p.29 ~ p.30
"체벌은 갖가지 이유로 행해질 수 있고, 거기 따라붙는 훈계도 그만큼 다양하다. 하지만 표면상의 다양성을 넘어서, 체벌은 언제나 단 하나의 메시지를 반복적으로 전달한다. 바로 체벌이 언제라도 반복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너의 몸은 온전히 너의 것이 아니며, 나는 언제든 너에게 손댈 수 있다는 가르침이다. 체벌에 동의한다는 것은 이 가르침을 수용한다는 뜻이다. 우리는 이렇게 해서 모욕의 역설을 이해하게 된다. 모욕은 타인의 인격을 부정할 뿐 아니라, 그러한 부정에 대해서 부정당하는 사람의 동의를 강요한다. 모욕당하는 자가 모욕에 동의하는 순간, 모욕은 더 이상 모욕이 아니다. 그것은 의례의 일부이며 질서의 일부가 된다. 결국 모욕은 자신의 본질을 부정하는 것을 최종적인 목표로 삼는 폭력이다. -김현경 ‘사람, 장소, 환대’-"
p.30
"나는 언제든 너의 몸에 손댈 수 있다는 가르침, 과거 여성에 대한 폭력도 같은 메시지를 깔고 있었다. 체벌을 비롯하여 친밀한 관계에 있는 타인에 대한 반복적 폭력은 모두 같은 메시지를 보낸다. 나는 언제든 당신을 통제할 수 있다는 권위주의적 메시지, 당신이 존재할 권리를 결정하는 사람은 당신이 아니라 때리는 사람인 나라는 주장, 그렇게 힘으로 상대를 침묵시키고 상대의 목소리를 부정하고 때리는 사람의 목소리를 상대 안에 심으려 하는 시도다. "
p.36
"부모의 체벌 덕분에 내가 괜찮은 사람이 되었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부모의 체벌에도 불구하고 나는 괜찮은 사람이 되었다고 말해야 한다."
p.39
"소중한 대접을 받지 못하면 스스로를, 그리고 다른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키우지 못한다."
p.54
"가정 내 체벌금지를 법에 명시해야 하는 이유는 부모들을 범법자로 만들려는 게 아니라 아이들도 성인들과 똑같은 정도로 모든 종류의 폭력에서 법적 보호를 받을 권리를 갖고 있음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다."
p.57
"부모의 자녀에 대한 권리는 부모의 자유권이라기보다 자녀의 보호를 위해 부여되는 기본권으로 권리보다는 의무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가족 내에서 부모의 양육방식은 치외법권적 ‘천륜’의 영역이 아니며 인권 보호를 위한 국가의 제재 대상이어야 한다. 비대한 국가를 선호해서가 아니다. 공공의 개입이 닫힌 방문 안에까지 이루어질 때에만 비로소 숨을 쉴 수 있고 자유로워지는 약자들이 가족 안에 있기 때문이다."
p.66
"기도를 할 때에도 남편과 자식들 말고 스스로를 위해서는 아무것도 빌지 않는 엄마는 욕심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을 ‘갈아 넣어’ 운영하는 ‘가족’의 성공을 꿈꾸는 야심가다. 이게 다 너를 위한 거라고 하지만 사실은 엄마 자신을 위한 것이다. 엄마 꿈의 대리 실현자가 된 아이는 희망의 포로다."
p.79
"‘동반자살’이라는 표현은 명백한 살인과 아동인권 침해를 온정의 대상으로 만들고 부모가 자기 뜻대로 자녀의 죽음을 결정할 수 있다는 잘못된 인식을 퍼뜨립니다."
p.81
"이러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 사회가 고민해야 할 일은 사회적 안전망이 제대로 갖춰지고 작동하는가 점검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동반자살’이라는 표현은 관심의 초점을 개인의 비극에 맞추고 “오죽했으면...”이라는 반응에서 드러나듯 부모의 안타까운 심정을 동정하고 끝나도록 만듭니다."
p.88 ~ p.89
"부모 이외에 어느 누구도 아이를 돌봐주지 않는 것이 또 사실이기도 하다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앞의 유서에서 한 엄마가 썼듯 “내가 죽고 나면 아이를 돌봐줄 사람이 없다”라는 의식은 꽤나 만연하다. 다른 사람들이, 사회가 남겨진 아이들에게 최소한의 인간 대접을 하며 성장할 수 있도록 해줄 것이라는 믿음이 없다. 근대화의 전 과정에 걸쳐 이는 불행하지만 사실이기도 했다."
p.88
"우리 사회엔 가족을 운명공동체로 바라보고 부모는 자녀에 대해 무한책임을 져야 한다는 강박이 지나치게 뿌리 깊다. 부모는 항상 모든 것을 바쳐 자녀를 위해 희생하고 뒷바라지해야 하고 만약 그렇지 못하면 부모 자격도 없다는 식의 강박관념 말이다. 자신과 자녀의 자아를 분리하지 못하고 내 아이들의 인생이 따로 있다고 바라보는 인식이 희박하기 때문에 자신의 생을 끝낼 때 자녀를 거두는 것이 끝까지 책임을 지는 부모의 태도라고 생각해버리기 십상이다."
p.90 ~ p.91
"협의 이혼이든 가출이든 한국 남성들이 자녀 살해 후 자살을 시도하는 첫 번째 원인은 아내의 부재와 관련이 있다. 즉, 어떤 ‘친엄마’는 자녀의 생존을 자신과 분리시켜 생각하지 못하며, 어떤 아버지들에겐 자녀 양육을 전담해줄 ‘친엄마’가 없는 것이 자녀 살해와 죽음을 선택할 만큼 고통스러운 상황인 거다. 개인이 자신뿐 아니라 자녀의 생사를 선택하는 무서운 결정을 할 때조차 한국 사회에서 어머니의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은 이토록 짙게 배어 있다."
p.95
"한국 사회에서 부모의 자녀 살해 후 자살은 사회적 안전망이 부족하고, 생존의 책임을 떠맡은 핵가족이 위기 상황에서 해결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 그리고 공고한 가족주의로 인해 부모 자녀 사이에 자아가 분리되지 못한 자아혼란이 함께 만들어내는 참극이라 할 수 있다."
p.105
"친권은 부모가 자녀를 보호하고 가르칠 ‘의무’지 자녀에 대한 처분 ‘권리’가 아니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는 ‘친권’을 지나치게 넓게 해석한다. 법류상의 친권은 ‘자녀를 보호하고 교양할 의무’에 방점이 찍히는 것이고 친권자인 부모가 이러한 의무를 소홀히 할 경우 친권은 박탈될 수 있는데도 말이다."
p.113
"벼랑 끝에 몰린 미혼모가 영아유기라는 범죄를 저질렀을 때 처벌은 여성만 받는다. 현행법이 직접 아이를 버린 행위를 한 사람만 처벌하기 때문이다. 친부에게 임신 사실을 알렸지만 도움을 거절당해 아이를 유기했을 때도 친부는 법적 책임이 없다. 아이는 남녀가 함께 있어야만 만들 수 있는데 왜 여성에게 모든 책임이 전가되는 걸까."
p.117
"2013년 3월 호주 정부는 무지막지한 강제입양으로 “어머니에게서 아이를 분리하도록 강요했던 정책과 관행들이 그들에게 평생 고통을 남긴 것”에 대해, 많은 이들이 끊임없는 고통과 정체성 갈등, 상실감에 시달리며 살아가도록 한 데 대해 공개 사과했다. 한국에선 누구도 사과하지 않았다. 미혼모와 해외입양인들의 오래된 고통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p.176
"국가가 모든 책임을 가족에게 전가해버린 탓에 가족이 각자도생으로 살아남아야 하는 현실에서 가장 약한 자인 아이들이 늘 피해자가 된다."
p.186
"“자녀가 경쟁에서 이기기를 바라는 부모는 아이 대신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모든 것을 선택해왔다. 덕분에 아이는 시행착오를 거치지 않고 더 많은 것을 가진 성인이 됐지만 결정하고 판단하는 능력을 갖출 기회를 놓쳤다. 결국 스스로 생각하지 못하고, 무엇을 결정하지도 모험하지도 못하는 어른이 되어 세상에 나갈 문 앞에 서게 된다. 아이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했던 일들이 사실은 아이에게 독이 되어버린 아이러니한 상황을 맞게 된 것이다.”
- 대한민국 마음 보고서, 하지현-"
p.190
"가족주의를 떠나서 보편적으로 부모와 자녀의 심리적 분리는 부모뿐 아니라 자녀에게도 어려운 일이다. 자신 안에 내면화한 부모의 모습과 싸우고, 달래고, 도망치고, 협상하고, 이해하는 과정이 곧 사람이 자기 자신이 되어가는 성장의 과정이다. 나이가 든다고 끝나는 일도 아니고 어쩌면 평생 지속해야 하는 과제이다. "
p.208
"유년기와 양육에 대한 이해가 높아지고 시각이 서서히 변해감에 따라 입법도 변해갔다. 권력의 우열이 존재하는 관계에서 강자의 폭력으로부터 약자의 인권을 보호하려는 조치들도 법에 반영됐다. 예컨대 19세기 후반에는 아내에 대한 남편의 폭력이 법으로 금지됐으며 20세기 초반에는 고용주의 피고용인 폭행이 법으로 금지됐다."
p.210
"아이를 때리면 체벌의 옹호자들이 ‘개선’이라고 해석할 당장의 표피적 효과는 거둘 수 있을지 몰라도 역사 속에서 늘 그래왔듯 폭력은 더 많은 폭력으로, 그리고 더 크고 위험한 세대 간 단절로 이어질 뿐이다. 린드그렌의 이러한 주장은 체벌을 부모의 훈육방법이 아니라 약자에 대한 폭력으로 바라보도록 시각을 교정하는 데에 크게 기여했다."
p.210 ~ p.211
"“폭력 없이 아이를 키운다고 해서 우리가 영원한 평화의 상태 안에서 살아갈 새로운 인류를 만들 수 있을까요? ... 이 가난하고 아픈 세상에서 평화를 원한다면 해야 할 다른 많은 일들이 있음을 압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전쟁 중이 아닌데도 세상에는 잔혹함과 폭력이 가득하고 아이들도 여기에서 눈감을 수 없습니다. 아이들도 이 폭력을 매일 보고 듣고 읽습니다. 그리고 결국 폭력은 자연스러운 상태라고 믿게 될 것입니다. 그것 말고 다른 삶의 방식이 있다고 우리가 집에서부터 아이들에게 모범을 보여주는 건 불가능한 일일까요? 결코 폭력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걸 스스로에게 상기시키기 위해 부엌 선반에 작은 돌을 올려두는 것도 좋은 아이디어일 것입니다.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이는 세계평화에 대한 작은 기여가 될 것입니다.”
- 린드그렌- "
p.213
"스웨덴 정부가 법으로 부모의 체벌을 금지하며 목표로 했던 것은 문화적 규범의 변화뿐만 아니라 신체적 온전성 physical integrity에 대한 아이들의 권리를 보호하고 명시적으로 인정하려는 것이었다. 단지 훈육 방법의 변화가 아니라 신체적 온전성 보호가 어린이의 기본적 권리라는 태도의 변화였다."
p.214
"법으로 부모의 체벌을 금지할 즈음, 체벌과 같은 폭력에서 보호하는 것뿐만 아니라 집, 도로, 운동장, 학교, 스포츠 시설 등 모든 장소에서 아이들의 안전사고를 방지하는 것이 사회적 의무라는 목소리도 높아졌다."
p.216
"<유엔아동권리협약>이 제정될 때에도 어린이의 권리를 규정한 이 협약이 반가족적이라는 등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다. 그러나 <유엔아동권리협약>은 좋은 가정환경의 절대적 중요성을 강조하며, 위기에 처한 부모에 대한 공동체의 지원을 강조한다. 자녀에 대한 폭력이 발생했다는 것은 가족이 위기에 처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므로 어린이의 삶과 웰빙, 존엄성 보호를 위해 정부의 개입이 필요해지는 것이다."
p.217
"부모의 체벌금지를 비롯한 모든 종류의 체벌을 금지하는 법의 목적은 단순하다. 명백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매우 선명한 메시지를 내보내는 것. 폭력과 비폭력 사이에 아주 단순하고 선명한 줄을 긋는 것이다. 어른의 책무는 아이들에게 폭력이나 협박, 위협에 기대지 않고도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있음을 가르치는 것이며, 정부의 책무는 비폭력적으로 아이를 키우는 게 가능한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그러려면 체벌을 금지하는 법과 함께 부모가 필요로 하는 지원을 정부가 제공하고, 정부와 사회가 합심하여 부모가 아이들에게 좋은 역할 모델이 될 만한 시간과 에너지를 갖기 위해 필요한 환경을 체계적으로 조성해야 한다."
p.219
"‘스웨덴식 사랑 이론swedish theory of love’은 진정한 인간관계는 서로에게 의존하지 않고 불평등한 권력관계에 놓이지 않는 개인들 사이에서만 가능하다고 말한다. 자율적이고 평등한 개개인 사이에서만 사랑과 우정 같은 인간적 교류가 이루어진다. 심지어 부모와 자녀 관계에서도 서로 의존적이고 굴욕을 강요하는 권력관계가 존재하는 한 진정한 사랑은 불가능하다고 바라본다. 국가는 이런 굴욕감에서 개인을 해방시킬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p.220 ~ p.221
"스웨덴의 이상적 가족이란 부부가 각자 일을 하며 서로에게 경제적으로도, 양육의 부담으로도 의존적이지 않은 성인들, 그리고 가능한 한 이른 나이에 독립하도록 고무되는 아이들, 서로가 서로의 신체적 온전성을 훼손하지 않는 구성원들로 이루어진다. 이는 ‘가족적 가치’를 갉아먹는다기보다 사회적 제도로서 가족이 현대화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가부장의 권위와 아내의 헌신, 자녀의 복종이 더 이상 가족의 규범으로 작동하지 않지만 여전히 스웨덴의 성인들은 부모되기를 매우 진지하게 받아들인다."
p.244
"우리 사회에서 아이는 곧잘 어른을 세계 편입되고 경쟁하기 위해 필요한 지식을 최대한 빨리 주입시켜 키워야 하는 존재로 인식될 뿐이다. ‘젊잖은 아이’가 칭찬으로 많이 쓰이는데 ‘젊잖다’의 어원은 ‘젊지 않다’다. 젊지 않고 어리지 않은 몸가짐을 칭찬하는 이면에는 젊고 어린 행동거지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깔려 있다. "
p.254 ~ p.255
"권력을 가진 사람은 대체로 공감력이 낮다. 다른 사람들 처지에 서보려고 애쓸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 공통의 경험도 꼭 공감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같은 일을 겪은 사람이 현재 그 일을 겪는 사람에게 덜 공감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
p.255
"심리학자 폴 블룸은 세상을 더 낫게 만들려면 다른 사람의 신발을 신어보는 방식의 공감력 향상보다는 되레 한발 물러나 객관적이고 공정한 도덕에 근거해 판단하는 이성적 역량을 키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p.255
"공감의 능력이 확대되는 건 아름답지만 저절로 이뤄지는 것도 아니고 어렵게 익혀야 하는 일이다. 흔히 상상하는 것과 달리 공감의 확대는 어쩌면 감성이 아니라 이성을 발휘해야 도달가능한 목표일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의 고통을 마치 자신이 겪는 양 느낀다 해도 고통의 원인을 잘못 인식하면 행동이 엉뚱해지듯, 그릇된 인식이 공감을 왜곡하는 일도 잦다. 나와 다른 사람과 공존하는 기술, 갈등의 해결, 세상의 고통을 줄이는 방법을 이야기할 때 역지사지의 확대, 공감의 향상을 핵심에 놓는 것은 지나치게 이상적이다."
p.256 ~ p.257
"사람에게 해서는 안 될 짓의 선을 정하는 게 먼저다.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상상해보는 공감의 감수성을 높이려는 노력은 물론 필요하지만 이를 개인의 도덕적 과제, 감성의 영역으로만 남겨두어선 안 된다. ‘우리’의 폭을 넓히려는 교육이 공교육에 제도적으로 포함되어야 하고, <차별금지법>, <이주아동권리보장기본법>을 제정해야 한다. 그게 우리를 같이 살아가게 해주는 공감의 제도다. 역지사지하고 공감하는 능력보다 사적 관계에선 예의, 공적 관계에선 정책과 제도가 우리의 공존을 가능하게 해주는, 더 인간적인 장치다."
p.259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폭력에 반대하는 개인의 인권의식이지 남의 아이도 내 자식처럼 돌보는 엄마의 눈, 전 사회의 ‘확대 가족화’가 아니다. 모르는 사람이 아이를 때리는 것을 보았을 때 항의하고 신고해야 하는 이유는 사람이 더 약한 이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것을 용납해서는 안 되기 때문인 것이지, 우리가 모두 이웃의 아이를 함께 지키는 대가족 구성원의 마음자리를 가져야 하기 때문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