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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마태 19, 3-12 아내를 버려도 됩니까? 본문

마태오의 우물/마태오 19장

마태 19, 3-12 아내를 버려도 됩니까?

하나 뿐인 마음 2017. 8. 18. 10:32


너희의 마음이 완고하기 때문에 ... (19,8)


나는 이 복음의 묵상이  절대 이혼해서는 안된다는 결론으로, 이혼이 하느님이 맺어 주신 것을 내가 갈라놓는 것으로 서둘러 결론나지 않길 바란다. 오히려 '하느님이 맺어 주신 것'에 대한 더 싶은 묵상과 이해를 얻길 바란다. 하느님은 과연 남자와 여자가 영원토록 서로 묶여 있고 매여 있길 원하셨을까, 아니면 여자와 남자가 서로 맺어져 연결되어 있기를 원하셨을까. 


"하느님은 당신의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하셨다. '하느님'의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로 그들을 창조하셨다. (창세 1,27) 남자와 여자가 하느님의 모습으로 각자 온전히 존재할 수 있을 때 '둘이 하나됨'의 의미가 있다. 둘 다 완벽한 인간이어야 한다는 말이 아니라 여자이건 남자이건 하느님 모상으로 태어난 각각의 인격체로 존재해야 한다는 말이다. 부족함을 서로 보완해주고 미숙함을 서로 돕고 견디며, 때론 아프고 때론 행복할 완성의 길을 걸으며 서로 기다려주고 손을 내밀어 주는 사랑과 배려가 필요 없다는 말도 아니다. 부족하고 미성숙하다고 해도 그 혹은 그녀는 이미 하느님의 모상으로 태어난 하나의 온전한 인격체이며, 기다려주고 손을 내밀어준다고 해도 그녀 혹은 그는 '더 나을 것 없는' 하나의 온전한 인격체이란 말이다. 하나는 온전한 인격체이고 나머지는 소유되거나 버려져도 되는 존재라면 이미 그 결합은 하느님이 맺어주셨다고 보기 어렵다. 나는 나 자체로 충분하고 너 역시 너 자체로 충분한 관계. 충분한 너와 충분한 내가 만나 또 하나의 충분한 '하나'를 이루는 것이 혼인이다.


우린 종종 우리의 완고한 마음이 만들어 낸 이유가 마치 정당한 '법'인것 마냥 생각할 때가 많다. 아내를 물건처럼 소유하며 싫증이 나거나 필요 없다 싶을 때 쉽게 버리기 위하여 만들어 낸 이유가 마치 아내를 '안전하게' 떠나가도록 도와주는 안전 장치인 양 '법'이라 생각한 이들은 예수님 시대 이전에도 있었고 지금도 도처에 널렸다. 제멋대로의 이유로 타인을 함부로 다루는 사람들에게 어떤 말이 설득력이 있을지...


어쨌건 아내에 대한 남편의 처지가 그러하다면 혼인하지 않는 것이 좋다(10절) 여기는 것처럼 남편에 대한 아내의 처지가 그러하다면 당연히 아내에게도 혼인하지 않는 것이 마땅하고 옳은 일이다. 아내를 버려도 되는(3절) 이유를 생각하는 사람은 오히려 아내에게 버려져도 할 말이 없지 않겠는가. 하지만 이 모든 것에 앞서 결혼의 삶은 '성사의 삶'이며 인간은 그 누구도 버려져서는 안 된다. 


하느님이 맺어주신 이유는 끊어지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둘이 서로 이어져 있음에 '행복하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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