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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부활대축일 밤 본문
밤 9시 미사가 끝나고 정리하는데 복사는 대축일 초를 두 개나 쏟아서 바닥과 계단을 엎드려 칼로 긁어냈다. 오늘따라 신자들은 2층 유아실 불도 다 켜두고 집으로 갔고 부활초 초심지도 부러뜨려 놨다. 신부님은 옷이고 책이고 다 그대로 대충 벗어두고...
주임신부님 식사시간에 맞추어 혼배를 해야한대서 성당에서 주는 국수 한그릇 얻어 먹지 못하고 굶은 채 성사 준비를 하고 다 떠나간 후 치우고 다음날 미사까지 준비했다.
성삼일 내내 누구보다 먼저 나오고 누구보다 늦게 집에 들어가기까지 치우고 닦고 2,3층을 오가며 일했다. 내게 남은 건 지친 몸뚱이와 갈 곳 없는 원망 뿐, 부활하신 그분은 왜 보이지 않는가. 알아달라 말하고 싶은 게 아니라, 이래도 되냐 묻고 싶은데...
아이를 끌어 안고 혼자 엉망이 된 방에서 늦은 밤 펑펑 울었다던 친구 생각이 나고, 늘 내 편이었던 신부님 친구 얼굴은 애써 지운다. 이 큰 성당에, 이 늦은 시간에 혼자 남아 내 삶과 예수님을 생각한다.
버틸 힘 말고 이길 힘을 주소서, 주여.
저는 아직도 수난의 길에서 주저 앉아 있으니,
나더러 오라하지 마시고 나에게 와 주소서, 주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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