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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훗 날 본문
죽음을 생각했습니다.
아니, 죽음이 나를 엄습했습니다. 어김없이 이맘 때면 제가 아프다는 게 참 신기하기도 합니다. 문제는 매번 앓고 난 후 그때였다는 걸 비로소 알게 된다는 거지만요. 이번에는 많이 아팠습니다. 늘 호되게 앓긴 합니다만 처음 앓는 새로운 병?이라 겁도 많이 났었습니다. 서서히 근육통이 번지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열이 오르고 의식을 놓고 싶을 만큼 머리가 아프고 어지러웠습니다. 얼마 전 뇌졸증으로 일주일 만에 가시는 형제님을 본 터라, 더 덜컥 겁이 났나 봅니다. 혼자서 물수건을 머리에 두르고 방에 누우니 그 좁은 수방이 우주보다 넓게 느껴졌고 제 침대도 어느 망망대해보다 넓은 듯 했지요. 그 좁은 방에서 그렇게 외롭긴 또 처음이었습니다. 저의 죽음도 이렇게 외롭고 쓸쓸할까요?
정리는 하고 갈 수 있을까...
언젠가는 떠나야 하는 게 우리 삶이지만 원하는 대로 갈 수만은 없다는 것 또한 알기에 늘 제대로 떠날 수 있을지가 걱정입니다. 정리는 하고 갈 수 있을까, 만약 병원으로 가게 된다면 어떻게든 정신을 차리고 대충이라도 정리를 해야겠다 ... 생각이 꼬리를 물고 늘어지길래 해열제라도 찾으려 복도를 나섰다가 쓰러졌고 정신을 잃은 것까지는 아니지만 정신을 차릴 수 없었습니다. 정말 무서웠지요. 끝나서 무서운 게 아니라 '이대로' 끝나서 무서웠다고나 할까요. 하지만 회복하는 이틀 동안 내내 누워서 생각해보니, 이대로 끝나서 무섭다는 말은 지금의 내가 그대로 드러나는 게 무서운 건지도 모르겠다는 말과 같을 수도 있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못다할 말들도 많겠지요.
차마 다 적을 수는 없지만 냉혹한 공동체의 현실이라는 것도, 적당한 거리감이 주는 자유의 이면에 숨겨져 있던 무관심이 이리도 엄혹한 것이었구나를 실감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선 태산을 쌓을만큼 잡다한 생각을 했지만,,, 양이나 영향력에 비해 그리 중요한 주제는 아닌듯 해서 글로 남기지는 않으려고 합니다. 어쨌건 저는 다시 '어떻게 살아갈 건가'라는 대주제 앞에 서게 되었지요.
수도자에게 있어서 삶을 정리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내가 남겨두는 것들과 내 의지에 무관하게 남겨 지는 것들을 정리하는 것. 언제일지 모르는 그 때를 위해 지금을 살아가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삶인가 봅니다.
그나저나 제 인생이 저물어 가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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