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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성 요셉 대축일을 지내며 본문

vita contemplativa

성 요셉 대축일을 지내며

하나 뿐인 마음 2013. 3. 26. 08:30


남의 아이를 기르는 심정은 어떤 걸까?

아니, 하느님의 아들을 기르는 심정 말이다.


어쩌면 요셉 성인의 소원은 참한 여인과 소박하게 꾸려나가는 단란한 성가정이었을 거다.

'의로운' 사람이었던 요셉은, 말수가 적고 건조하면서도 곧은 사람이라

약혼녀의 잉태 소식을 듣고는 조용히 마무리를 지으려고 했다.

누구를 탓하거나 자신에게 잘못한 이에게 복수를 한다는 건 그에게 관심 밖의 일이었다.

그저 조용히, 그간의 정을 생각해서라도 서로에게 더이상 상처를 입히지 않고 마무리 지으려 했던 것이다. 

나는 이 성경에 나오는 이 요셉 성인를 묵상할 때마다 너무나 꼿꼿하셨던 우리 아버지 요셉을 늘 떠올렸다.

아버지의 '곧음'은 사춘기의 나를 무시로 서운하게, 때로는 억울하게 만들었다.

물론 이런 감정들과 더불어 나는 아버지에 대한 '존경'이라는 양가감정을 품고 여지껏 살아가고 있다.


그런 요셉에게 천사가 찾아오고,  그는 새로운 삶을 시작해야 했다.

내 것이 아닌 삶.

내 것이지만 내 것이 아닌 삶. 

생명 또는 죽음처럼 내가 살고 내가 죽는 것이지만 나의 의지를 넘어선 영역의 것들.

그래서 임종의 수호성인이 되신 건지도 모르겠다.


요셉 성인은 적어도 성경에서는 한 마디의 말도 하지 않는다.

나에겐 이 사실이 침묵보다는 생략으로 여겨진 적이 많았지만 여튼 성경에서는 그의 죽음마저도 생략되어 있다.

하지만 요셉성인은 말 한 마디 없이 나에게 참 많은 것을 깨닫게 해주신다.

내가 요셉이었다 해도 약혼녀 마리아에 대해 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다.

당장 돌로 맞아 죽을 수도 있지만 그렇게까지는 하고 싶지 않고, 나의 사회적 입장도 있으니

잘못을 저지른 상태로는(성령으로 말미암은 잉태라는 사실을 몰랐으니....) 함께 인연을 만들 수도 없는 노릇.

물론 나의 경우는 누군가를 탓하거나 잘못을 인정하고 그에 상응하는 댓가를 치르게 하기에는

내가 너무 게으르기 때문이지만 이런 속내의 이유를 굳이 들지 않더라도 나는  '조용히 마무리를 짓겠다. 하지만 너는 더이상 나와 상관이 없어야 한다'는 결정을 무지 '옳은' 결정으로 여기며 살았을 것이다.

이런 요셉에게 천사가 찾아오고, 그의 인생에 오점이 남을 지도 모르는 귀찮은 일을 알려준다.

의로운 사람 요셉은 세상이 모두 자신을 비웃을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더이상 자신은 '의로운 사람'이 될 수 없을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천사의 말씀을 받아들인다.

하룻밤 사이에 그는 전혀 다른 삶을 시작해야 했다.

 

요셉 성인을 묵상할 때마다 나는 내가 옳다고 생각하고 지키고 싶었던 '가치'를 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그 가치들조차  초월하도록 부르시는 예수님의 초대를 듣는다.

 

경계를 허무는 법.

요셉 성인은 내가 정해놓고 지키고 싶은 많은 것들의 경계를 허물라고 말한다.

내 것과 네 것. 내 뜻과 하느님 뜻 혹은 너의 뜻.

오누이 같은 관계의 아내와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아들과 함께 살아가는 '아버지'라는 위치의 요셉.

혈연이 아닌 가족공동체를 이루고 내 뜻을 버려가며 하느님 뜻을 향해 노력하는 우리들처럼.

 

라 투르의 이 그림은 참 재밌다.

소년 예수는 아버지가 허리 굽혀 일하는 곳을 비추지 않고 자신의 얼굴을 비춘다.

아버지가 작업을 잘 하도록 돕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얼굴을 잘 보라고 비추는듯 하다.

요셉의 시선 역시 딱히 작업에 집중하는 것처럼 보이진 않는다.

자신을 지켜보는 예수의 시선에 더 신경을 쓰는 것처럼 보인다면,,,, 이건 내 문제인가.

요셉 성인은 자신의 일보다 예수님에게 집중함으로써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묵묵히 받아들이고 살아낼 수 있었을까.

 

내 삶은 평생 경계를 허물고 다시 짓는 성찰과 범죄의 반복이겠지.

 

성 요셉께 드리는 어느 수도자의 기도

 

숨은 의인 성 요셉이여.

당신은 보수를 기대하지도 않고

누가 알아주기를 바라지도 않고

당신을 내어주셨으며

묵묵히 봉사하는 것으로 만족하셨습니다.

당신은 항상 깨어 말씀에 귀기울이셨고

그것이 하느님의 뜻이라면

즉시 당신 계획을 포기하셨으며

주님의 길을 선택하는데 주저치 않으셨습니다.

주님의 뜻을 받드는 것이 당신 음식이 되고

남을 위한 봉사가 당신의 기도가 되었으며

가족을 돌봄이 당신의 유일한 기쁨이셨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어느 누구도

당신을 성인이라 생각지 않았고

더구나 당신자신은 그저 종으로만 여겼습니다.

그랬기에 당신은 하느님께 더욱 보배로웠고

그런 당신의 겸손과 의덕이

하느님의 눈에 드셨습니다.

비록 이 세상에서

영광이나 명성도 누리지 못하였다 하여도

지금 당신은 아드님 곁에 우뚝 서 계십니다.

당신은 주님을 찾는 이들의 인도자시니

우리를 이끄시어

당신의 숨은 길을 걷게 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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