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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만 가지 행동 본문
김형경 지음. 사람풍경.
우리 수녀님들 중에 이분이랑 개인적 친분이 있는 분이 계시나 싶을 정도로 이분 출판된 책이 고스란히 수녀원 도서실에 꽂혀있었다.
아무래도 수녀원 특성상 모든 책이 공명정대한 선택을 받을 수는 없는데도 불구하고 이런 종류의 책이 이렇게나 종류별로...
내키지 않는다 하면서도 발견하는 족족 대출해서 읽어야 직성이 풀렸던 나는 뭐냐...
책에 대한 리뷰 보다는 그냥 책을 읽고 그날 썼던 일기를, 부끄럽지만, 옮겨본다.
여기까지 와서도 신경 쓰이는 것들 중 하나가 바로 JS이 엄마다.
오늘 김형경의 만가지 행동을 읽다가 떠오른 것도 바로 JS이 엄마...
마음이 불편한 사람을 만났을 때 나 자신에게 일어줘야 하는 말, '저 마음이 바로 너의 마음이다'라는 글에서 아직 멈추어 있다.
성당에 아예 안나오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하고,
문자를 봤으면 최소한 간단한 답이라도 해야 하는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이번주 토요일에 만나려고 마음 먹고 있었는데 내가 없었던 건 아닐까 싶기도 하고...
여튼 마음이 복잡하다.
하지만 지금 제일 마음에 걸리는 건,
그동안 내가 왜 그렇게 준성이 엄마가, 혹은 준성이가 마음에 걸렸었냐는 거다.
씻으려고 샤워실에 들어가서 문득 다시 생각을 시작했고 물이 흐르는 소리를 들으며 세수를 하다 어쩌면... 싶더라.
키도 작고 약하고 아는 건 많은데 이러저러한 인간적 관계가 서툴고 어색한 녀석.
그 슬픈 그림을 보면서도 난 사실 슬픔보다는 이럴즐 알았다는 생각을 더 많이 했었지.
커다란 가방, 비를 고스란히 맞고 있는, 우산도(부모일까?) 그를 가려주지 못하는 ...
그녀석의 그림을 하나하나 해석해 내면서도 나는 슬픔보다는 씁쓸함을 느꼈던거 같다. 왜인가.
나였다. 커다란 가방을 메고 혼자 그 먼길을 꼬박 6년을 걸어다녔던 내가 떠올랐던 거다.
선생님의 부당한 취급에 찍소리 못하고 돌아온 날 위해 큰소리 내면서 싸워주거나 두둔해주지 않는 부모님에 대한 서운함이었다.
아파도 학교 가기 싫다 한마디 못해보고 묵묵히 집을 나섰던 나.
다시 돌아와야 할만큼 아픈데도 끝까지 걸어 학교를 가고, 다시 그 먼 길을 혼자 걸어와야했던 나.
아프다고, 데려다 달라고, 날 좀 위로해 달라고 단 한 번도 보채본 적 없는 나.
공부도 새벽운동도 가방도 숙제도 모든게 버거웠지만 꾸역꾸역 견디는 게 다였던 나한테 화가 났고
나를 그렇게 키우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 여기셨던 내 아빠, 내 엄마한테 화가 난 건데....
난 그 아이의 엄마를 보고 또 그 아이를 보고 내 어릴 저 감정을 느끼며 싸늘하게 돌아서곤 했었구나 하는 생각이 겨우 든다...
미안하다. 나한테도 엄마 아버지한테도
무엇보다 그 아이와 그 아이의 어머니한테도...
다음주 주일학교에서 무엇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은, 그날까지는 잠시 나를 좀 돌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