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4/11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깊이에의 강요

무엇을 위해 아침에 일어나는가 본문

雜食性 人間

무엇을 위해 아침에 일어나는가

하나 뿐인 마음 2024. 9. 8. 21:14

조앤 치티스터 지음. 한정은 옮김. 판미동.

치티스터 수녀님다운 책.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 정신 없이 달려가고 있지만 정작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는 우리들, 성당에는 다니지만 제대로 믿을 줄 모르는 우리들, 신이 없다 말하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신의 은총을 바라는 우리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5개의 종교적 전통 안에서 길 잃은 이들에게, 길 잃은지도 모르는 이들에게 수녀님은 한사코 함께  가자고 말한다. 흔들려도 좋고 넘어져도 좋으니 함께 은총의 길로 가자고. 하느님 이야기인데 하느님를 강요하지 않는다. 멀쩡한 신앙을 얘기하시는 분 같아 너무 좋고, 같은 분도회라 더 좋고.


p.30
"할 수 있기 때문에, 할 수 있다는 이유로 지금 하고 있기는 하지만, 정말로 필요하지는 않은 것들을 내려놓아야 할 시간이다. 자신이 정말로 하고 싶지 않은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아야 한다."

p.31
"우리가 지금 하기로 선택 하는 것들, 그것이 무엇이든 지금 혹은 내일, 아니면 지금부터 몇 년 후에 우리의 삶에 영향을 줄 것이다. "

p.37
"우리를 망가뜨리는 것은 우리의 일이 아니다. 끊임없이 산만하기만 한 일들로 늘 바쁘다는 것이 문제이다. 반드시 해야 할 일을 하는 것과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는 것은 다르다."

p.37
"힌두교의 현자들은 할 수 있는 모든 일들이 아니라 하지 않으면 안 될 일들에 우리 안의 정령을 단단히 묶어 놓으라고 말한다. 이렇게 하면 '정신없이 바쁘기만 한' 시간이 머잖아 거룩하게 변할 것이다."

p.86
"자신이 터득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을 때, 자신이 주어야 하는 것을 모두 주었을 때, 그는 마침내 자신이 그토록 찾고자 한 '진정한 선'에 이르렀다."

p.104
"선과 악 사이에서 한쪽을 선택하는 것과 성결한 마음과 자아의 갈망을 구분하는 법을 배우는 것은 전적으로 다른 이야기다. 도덕적인 사람이 되는 것과 성결한 사람, 다시 말해 영적인 사람이 되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영적인 사람, 신의 임재 속에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되기 위해, 우리는 길을 인도해 줄 빛을 필요로 한다."

p.107
"결론적으로, 영적인 삶은 우리 주변의 사람들과 제도가 우리에게 기대하는 것뿐 아니라 신이 우리 내부에서 하는 일을 신뢰할 것을 요구한다. 언젠가 우리는 각자 홀로 서서, 우리 안에 있는 신의 존재에 의해 확인을 받게 될 것이다. 그때가 되면, 우리가 살아오는 동안 영혼 속에 신의 언어를 간직하고 있었는지, 아니면 다른 사람이 설정한 표준 뒤에 안주한 도덕적인 사람에 불과했는지 분명해질 것이다."

p.108
"신의 나침반을 따라가는 데 몇 년이 걸린다. 이것은 끊임없이 되풀이 되는 실수와 영적 실패, 종잡을 수 없는 혼란을 의미한다. 이 가운데 어떤 것들, 즉 금식과 기도와 사람들의 도덕적인 평가는 거룩해 보이기까지 한다. 이것들은 우리 스스로를 거룩하다고 여기도록 만들 수 있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영적인 삶에 배치되는 유혹이며, 어떤 죄나 부주의함보다도 심각하다."

p.109
"영적인 삶은 단순히 영적 수행의 반복이 아니다. 삶의 정수를 발견하고자 하는 의지가 필요하다. 자신이 진정으로 영적으로 깨어 있다고 느낄 때까지, 생명을 불어넣는 길을 발견하려는 부단한 노력과 인내가 필 요하다. 비록 불완전하나마 삶의 매 순간 속에는 살아 있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가르쳐 줄 수 있는 무언가가 있기 때문에, 삶의 모든 순간마다 마음을 열고 깨어 있어야 한다. 이는 때로 순간의 완전함은 그 불완전함을 받아들이는 데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기도 하다."

p.127
"참회와 죄책감은 인생의 두 가지 선물이다. 아침에 눈을 뜰 때마다 고통스러워하는 것이 아니라 더욱 많은 선한 결과를 남기기로 마음먹는 것이 열쇠이다."

p.130
"힘든 일들이 닥칠 때, ‘형편없어, 엉망이야'라고 말하지 마세요.
하느님께서 주신 것 가운데 엉망인 것은 없습니다.
이보다는 '좀 씁쓸한 걸’, 이렇게 말하세요.
씁쓸한 약초로 만들어지는 약이 있지요."
- 랍비 코브린

p.168
"실제로 우리를 가슴 아프게 하는 것은 바로 우리가 한 선택들이다. 삶에 가치가 없는 것들로 채워지는 삶은 허무감에 그늘진 삶이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된 걸까?"라는 말이 우리 모두의 우울한 질문이 된다. 이는 삶의 가치에 대한 진정한 대답은 자기 내면으로부터 올 수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외부로부터 삶에 대한 질문과 대답을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 줄 뿐이다."

p.171
"모세 라입은 이렇게 말했다. "만약 누가 당신에게 와서 도움을 청한다면, 당신은 '믿음을 가지고 신께 어려움을 내려놓으세요!'라는 경건한 체하는 말로 그를 실망시키지 마세요. 마치 신이 계시지 않은 것처럼 행동하세요. 이 세상에서 이 사람을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은 나 자신밖에는 없다고 생각하세요.""

p.179
"누르시아의 베네딕트가 살았던 시대에 그는 회피하고 싶은 갈망과 영적인 삶을 향한 갈망을 혼동하지 말 것을 경고한 유일한 영적 지도자였다."

p.180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갈망 뒤에 숨은 낭만주의를 경계해야 한다. 이것은 나를 나 자신에게 드러내는 일이다. 아무리 심적 중압감이 크고 그로부터 멀어지고 싶어도, 고립은 해답이 되지 못한다."

p.181
"안토니오 압바는 '평화롭게 지내는 것'이 해답이 되지 못할 때가 올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공동체 안에서의 삶이 우리 속에 있는 공허를 채워 줄 수 있다. 우리를 회복하게 하는 것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얻는 조언, 지지 그리고 정신이다."

p.215
"우리는 다른 한 손을 내밀고, 다른 생각과 약간의 도움을 주기 위해 이곳에 있다. 세상이 우리를 돌봐주는 동안 우리는 스스로 돌볼 수 없는 사람들이 신이 그들에게 허락한 '최소한의 삶'을 살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여기 있다."

p.225
"인생은 평생을 들여 해결해야 할 신비이다. 이야기 속의 여자는 배우고 싶어 하지 않았다. "나와 함께 수행을 해 보시지요."라고 데르비시가 말했다. 하지만 그녀는 자기성찰, 사색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녀가 원하는 것은 과정이 아니라 과정이 가져온 결과였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의 마음이 원하는 것을 찾아서 돌아다녔다."

p.232
"신이 어떤 부류의 사람들을 더 가까이 하고 그런 특별한 사람들은 신에게 더 가깝다는 개념 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완벽이라는 가혹한 짐을 지우고, 나머지 다른 사람들에게는 영적 한계라는 모욕적인 짐을 지운다."

p.233
"몇몇 사람들이 자신들을 영적인 삶의 유일한 수호자로 자처할 때, 그들도 우리도 실패한다. 그들이 거룩함의 성격을 결정지을 궁극적인 권리를 침해하고 영적인 삶의 지배자가 되어 나머지 모두를 대신해 이를 구분하고 정의할 때, 신과 우리의 관계는 단절된다. 이렇게 되면 우리는 신을 바라보는 자신의 관점과 삶 속에서 신을 느끼는 자신의 특별한 감각을 상실한다. 또한 그들에게 고개를 숙이도록 훈련받음으로써 스스로 거룩해지기를 포기하는 위험을 초래한다. 위험하게도 신이 정말로 어디에 계신지 잊어버리고, 은혜와 지혜, 선함과 거룩함을 우리가 아닌 다른 누군가에게 속한 것으로 단정하기 시작한다"

p.234 ~ p.235
"신은 어디 계시는가? 신은 모든 곳에 계신다.
모든 곳에. 인간이 성스럽다고 지정한 어떤 곳이 아니라 신이 정한 모든 곳에, 그리고 우리 자신 속에 계신다. 내 안에 있는 신과 의식적으로 만나고 교류하면, 신은 틀림없이 내 안에 계신다. 신과 지속적으로 만난다면, 우리는 자신의 깊숙한 곳에서 이를 느끼고 날마다 더욱 거룩함을 입게 된다. 자신의 안과 밖에서 신을 만나고자 하면, 신이 모든 곳에 계시다는 것을 알 수가 있게 된다."

p.261
"해로운 것들도 유익한 것만큼이나 중독성이 있는 것 같다. 이들은 삶의 나머지 부분들에 대한 우리의 흥미를 질식시켜 버리거나, 해로운 것들을 좇게 만들어서 우리의 능력을 소진시켜 버린다. 게다가 이것과 저것을 분간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하나같이 기만적이다. 우리로 하여금 더 이상 헤어나지 못할 정도로 마비시켜 버린다. 하지만 우리 안의 무언가는 '삶에서 어떤 것을 놓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雜食性 人間 '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는 잠깐 설웁다  (0) 2024.09.10
소년을 읽다  (0) 2024.09.10
악당의 무게  (0) 2024.08.30
얼마나 닮았는가  (0) 2024.08.30
괴롭힘은 어떻게 뇌를 망가뜨리는가  (0) 2024.08.30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