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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요한 15,9-17 누가 먼저랄 것 없는 아가페(나해 부활 제6주일 레지오 훈화) 본문
그리스도교의 성경에는 사랑을 표현하는 단어가 네 가지 있다고 합니다. 이성간의 사랑을 에로스, 가족간의 사랑을 스톨게, 우정이나 사회적 사랑을 필리아, 그리고 하느님의 사랑을 아가페라고 합니다. 이 중 아가페는 그리스도교 이전의 구약에도 존재하지 않았고, 그리스 문화권에도 발견되지 않는 그리스도교의 독특한 개념입니다.
에로스는 인간이 존재론적으로 스스로 충족되지 못하고 결핍되어 있음을 전제로 합니다. 즉 필요와 욕망, 결핍과 갈망의 사랑인 에로스는 스스로 충족되지 않기 때문에 생겨나는 욕구입니다. 이런 이유로 타락한 신화적 편견이나 오해 없이 신적인 사랑을 표현하기 위하여 성경 저자들은 '아가페'라는 말을 선택하여 쓰게 되었던 것이라고 합니다.
반면 아가페 사랑은 일차적으로 받는 것입니다. 아가페 자체이신 하느님으로부터 넘쳐흐르는 사랑을 받아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바로 아가페적 사랑입니다. 이는 결핍과 부족함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충만함과 넘쳐흐름에서 나오는 사랑입니다. 넘쳐흐르는 하느님의 아가페를 나누어 받아서 내 자신 안에 사랑이 충만해지고, 넘쳐난 그 사랑이 타자에게 흐르게 하여 서로 사랑하는 것이 바로 아가페입니다. 나에게서 멈추지 않는 사랑 말입니다. 그러니 하느님의 사랑이 내게로 넘쳐흘러와도 내게서 넘쳐 타인에게로 흘러가지 못한다면 하느님의 아가페를 에로스로 만들어버리는 것이겠지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서로 사랑하라(αγαπατε αλληλους, 아가파테 알렐루스, love one another)"고 명령하십니다. 아가파테는 지속성을 함축하고 있는 현재 명령형입니다. 한 번 사랑하고 마는 것이 아니라 계속 사랑하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아가파테라는 명령어에 "서로(αλληλους, 알렐루스)"라는 부사가 붙습니다. “서로 ~하라”는 명령이 제대로 실천되려면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각자가 먼저 사랑해야 합니다. 매번 평등하고 균등하게 사랑을 주고 받을 수는 없지만 무심하면 무례할 수 있고, 마음을 쓰지 않고 받는 것에만 관심을 가지는 사람과는 ‘서로’라는 관계가 성립되기 어렵습니다. 우리는 서로 노력해야 합니다. 사랑, 아가페는 서로가 해야 하는 일입니다. 상대방이 하든 하지 않든 모두가 먼저 아가페 하려고 할 때, 예수님이 의도하신 아가파테 알렐루스가 제대로 실현됩니다.
그런데 왜 주님은 “아가파테 알렐루스(서로 사랑하라)”는 이 당연한 말씀을 마지막 고별의 말씀으로 남기셨을까요? 우리가 알면서도 하지 못했거나 너무 어렵기 때문일 것입니다. 많은 경우에 사랑한다고 말은 하면서도 그 사랑을 행동으로 실천하는 것은 쉽지 않음을 우리는 경험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매번 다시 하느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하느님에게서 나오는 그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우리가 본디 받았던 이 사랑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느님이 계시는 한 우리들의 사랑은 이미 받은 사랑을 나누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게 그리 쉬운 일만은 아니지만 태어나기 전부터 우리들을 사랑하신 분이 계시기에 우리 중에는 나누어줄 사랑이 없는 사람도 없고, 사랑할 수 없을 만큼 사랑 받지 못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니 서로 사랑합시다! 하느님의 사랑이 내게서 끝나거나 고여서 말라버리지 않고 넘쳐 흘러가도록 합시다! 아가파테 알렐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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