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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마르 4,5-6 마치 열매마저 영글었는 양 살기도 한다 #dailyreading 본문
어떤 것은 흙이 많지 않은 돌밭에 떨어졌다. 흙이 깊지 않아 싹은 곧 돋아났지만, 해가 솟아오르자 타고 말았다. 뿌리가 없어서 말라 버린 것이다.(마르 4,5-6)
오늘은 ‘흙이 깊지 않아 싹은 곧 돋아났지만’이라는 구절에 머물게 된다. 흙이 깊지 않아 조금만 자라고도 일찍 싹이 흙 위로 드러났을 뿐인데, 마치 열매마저 영글었는 양 살고 있는 건 아닐까. 뿌리조차 제대로 내리지 못했다는 걸 깨닫지 못하고서 말이다. 글 몇 줄, 책 몇 권으로 모든 걸 꿰뚫을 수 없고, 인생의 단면으로 어찌 전 생애를 평가할 수 있으련마는, 우리는 자칫하면 돌밭에 떨어진 씨앗처럼 마치 열매마저 영글었는 양, 애잔한 삶을 살 수 있다. 얼마 전, 검색한 논문 몇 줄로 세계적인 석학과 빈약한 논쟁을 펼치던 이를 보았다. 내가 다 부끄럽고 애잔했지만, 스스로를 뿌리 깊은 나무라 생각하는 것을 말릴 수는 없었다.
흙 밖으로 섣불리 고개를 내민 뿌리 얕은 싹은 해가 솟아오르면 타버리고 만다. 덜 자랐으니 스스로 충분히 보유한 수분이 없고, 뿌리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 당장 수분을 빨아들일 수조차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서툴게 싹을 틔우고 웃자라지 않도록, 내 마음밭의 돌을 부수고 내다버리면서 흙을 고르는 일을 먼저 해야할 것이다. 내 마음이 돌밭인 줄도 모르고 사는 우둔한 삶이 되지 않도록 부지런히 나를 살피자, 매일 매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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