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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마태 24,42-51 종내 내가 행복한 길 본문
생각하지도 않은 때(44절). 밑줄을 긋고 가만히 들여다 본다.
예상하지 못한 날, 짐작하지 못한 시간(50절). 여기도 밑줄을 긋고 가만히 들여다 본다.
내 생각이 미치지 못하는 영역은 영영 내가 알 수 없는 영역인가, 알고 싶지 않아 애써 눈감은 영역인가.
요즘 곰곰이 생각하게 되는 질문들 중 하나가 바로 '정말 모르는 걸까?'이다. 나는 정말 저 사람의 저 반응을 모르는 걸까, 저 사람은 정말 이 상황을 모르는 걸까. 나는 저 사람이 저렇게 나올 줄 정말 몰랐을까. 저 사람은 이렇게 간단하고 쉬운 걸 정말 몰랐을까... 질문이 길어질수록 나 자신에 대한 대답 하나만큼은 분명해진다.
'모르고 싶었다.'
나에게 있어 '생각하지도 않는 때'는 '생각하고 싶지 않은 때'일 지도 모른다. 짐작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짐작하고 싶지 않은 시간'이었을지도. 몰라서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알고 싶지 않아서 외면하고 있는 수많은 사랑의 의무들.
충실하고 슬기로운 종(45절)은 그저 주인이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하게 따랐던 맹목적인 종이 아니었고 오매불망 주인만 기다리며 주인에게 잘 보이려 노력한 종도 아니었다. 주인은 자신이 없는 동안에도 자기 집안 식솔들이 잘 지낼 수 있도록 제때에 양식을 내어주라 하였고(주인의 곳간을 지키거나 식솔들의 행동거지를 감시하는 게 아니고) 주인이 없어도 넉넉하고 행복하게 잘 지낼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이 그 종이 해야하는 일이었다. 불시에 돌아온 주인이 보게 되는 것은 종의 충성이라기 보다는 식솔들의 편안한 행복이었다.
반면 못된 종(50절)은 주인이 늦어진다 생각하고는 동료들을 때리고 술꾼들과 어울려 먹고 마시는 데 시간을 보내면서 식솔들을 돌보지 않을 것이고 결국 예상하지 못한 날, 짐작하지 못한 시간에 돌아온 주인은 맞은 종들과 내팽겨쳐진 식솔들을 보게 되는 것이다.
주인이 돌아와서 볼 때에 '종이 행복할 수 있는 이유(46절)'가 바로 여기에 있다. 충실히 주인의 말에 복종해서가 아니라, 주인이 있든 없든 모두가 행복하도록 돌보는 일 자체가 행복한 일이기 때문이요, 그 모두의 행복이 바로 주인이 그토록 원하던 바이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가 잘 사는 길, 행복해지는 길을 정녕 나는 모르고 있는가. 그 길을 가기 위해 조금 더 바쁘고 조금 더 고단해야 함을, 이기적인 마음에 모르고 싶었던 건 아닌가. 예수는 제자들에게 분명히 말한다. "행복하여라, 주인이 돌아와서 볼 때에 그렇게 일하고 있는 종!" 그 길은 주인이 아니라 종이 행복한 길이다. 종내 내가 행복한 길이다. 그리고 그 길은, 내 앞에 무릎을 꿇고 종처럼 내 발을 씻기실(요한 13,4-5) 그분이 행복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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