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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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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ta contemplativa

낯선 익숙함

하나 뿐인 마음 2014. 4. 27. 09:06



수녀원에 들어가면서 사용하려고 구입했던 손톱깎기. 

새 손톱깎기가 생기면서 10년 넘게 쓰던 손톱깎기를 바꾸려고 마음 먹은 후로도 한참 동안 잘리는 느낌도 다르고 손에도 익지 않아 늘 어색했다. 그래서 그동안 잘 사용하지 않고 있다가 이곳에 와 짐정리를 하면서 새 손톱깎기를 꺼내서 사용했는데 그 어색함은 1년이 지났는데도 완전히 없어지지 않았다. 그동안 손톱을 깎으면서도 쉬 눅여지지 않는 낯설음이 참 난감했었다. 

그러던 중 오늘, 어쩌다 새 손톱깎기가 보이지 않아 이리저리 뒤지다가 예전 손톱깎기를 발견해서 손톱을 깎았는데, 한동안 그렇게 익숙했던 손톱깎기에서 낯익음이 아니라 또다른 낯설음이 느껴졌다. 

손톱깎기 하나에 뭐 그리 의미를 부여하고 있나 싶기도 했지만, 길게 길러서 메니큐어 바르는 걸 좋아하던 나로서는 수녀원 입회를 앞두고 손톱깎기를 장만하는 것이 좀 특별한 일이었다. 그리고 일주일마다 꼬박꼬박 손톱을 자르면서, 오르간 치는데 불편하지 않도록 수시로 손톱을 바짝 깎으면서 매번 '수녀가 되었음'을 실감하곤 했었다. 

그랬기에 강산도 변한다는 십 년보다 더 긴 시간동안 친숙했던 그 손톱깎기가 오늘 이렇게 새롭게 느껴진다는 것, 익숙했던 것이 또다시 낯선 존재가 되어간다는 것이 조금은 두렵게 느껴진다. 비뚤어진 삶이 처음에는 거북하게 느껴지다가 어느새 익숙해지는 건 아닐까, 사회 부조리와 만연한 불신이 댓가를 치뤄서라도 바꾸어야한다 생각했지만 나도 모르게 익숙해져버리고 당연해져서 그냥 그렇게 살아가게 되어버리는 건 아닐까, 바빠서 밀쳐둔 내 기도가 어느새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일이 되어버리는 건 아닐까...

세월이 하 수상해서 손톱 하나 깎으면서도 별의별 생각을 다하게 되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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