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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줄긋기 본문
글씨를 쓰기 위해서도 색연필 들고 수없이 많은 줄을 그어야했고,
초등학교 들어가서는 데생을 배우느라,
산수시간 도형을 그리느라 줄을 그었다.
붓글씨를 쓰기 위해 붓을 잡고도 줄을 그어댔고
수업시간 받아적는 판서도 모자라
색색의 싸인펜을 들고 교과서를 그어댔다.
대학 들어가 제도를 배웠던 나는
대학에서도 로트링 펜을 들고 줄을 그었고
문자 디자인을 한답시고
정교한 모눈종이 위에 이런저런 줄을 그었다.
수녀원 와서는 맨 종이 위에 반듯한 카드속지를 쓰기 위해
속절없이 지워질 줄들을 그어대기도 했다..
어울리는 것들을 연결하고자 줄을 긋기도 했고,
틀린 문제의 번호 위에다 마음에도 없는 붉은 사선을 긋기도 했다.
친구들과의 놀이를 위해 영역 표시로 줄을 긋기도 했고
편가르는걸 그렇게 싫어하면서도
체육시간에 달리기 출발선, 결승선도 그었다.
음표에 생명을 불어넣는 오선지를 만들기도 했고
지금도 툭하면... 성경에 밑줄을 그어댄다.
줄긋기.
하느님의 줄긋기 같은 우리들 삶.
어떤 줄을 길게,
어떤 줄은 짧게,
어떤 줄은 어어지기도 하고,
속절없이 지워질줄 알면서도
정성스럽게 그어진다.
붓, 연필, 펜, 투명한 눌림줄...
굵게도 가늘게도 겹으로도 그어지는 줄...
내 인생의 줄은 어떻게 그어지고 있는지...
각기 다른 그 줄들은
좋고 나쁨이 없이 줄 자체에 의미가 있다,
처음부터 지워짐을 전제로 한 줄긋기였다 하더라도...
이미 그어지고 있는 내 삶, 너의 삶.
자체에 의미가 있음을 상기하자.
짧았던 부모님의 인생줄,
허망했던 수많은 목숨들의 줄...
원치않은 삶을 이어가는, 혹은
부질없는 순간의 마음으로 끊어지고 마는 삶의 줄 모두...
의미를 두자.
줄긋기...
하느님의 줄긋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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