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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Indian Stampede Kills at Least 27 at Religious Festival 본문

vita contemplativa

Indian Stampede Kills at Least 27 at Religious Festival

하나 뿐인 마음 2015. 7. 16. 02:35

 

 

뉴욕 타임즈에서 'Indian Stampede Kills at Least 27 at Religious Festival'라는 기사를 보았다. 어제 있었던 힌두교 축제에서 자신의 죄를 씻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 중 서른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깔려 죽었다는 것. 죄를 씻고자 모인 행사에서 '내가 먼저' 죄로부터 자유로워지겠다는 마음은 더 큰 죄라는 결과를 낳았던 건 아닌가. 죄를 씻기 위해 타인을 밀치거나 제쳐둔다면, 다치게 한다면, 심지어 죽게 한다면 그 씻음의 의미는 도대체 무엇인가...

 

나만의 열심으로 죄를 씻고 싶다는 생각은 아마 우리 대부분의 바람일 것이다. 잘못은 용서받고 싶고 떳떳하고 자유롭고 싶은데 부끄럽기도 하고 자존심이 상하기도 해서 정작 중요한 과정을 슬쩍 뛰어넘어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혼자서 열심히 뉘우친 후 고해성사를 본다던가, 상대에게 용서를 구하는 단계는 슬쩍 뛰어넘어 선물을 주거나 친절을 베푼다. 축제에서 어쩔 수 없이 타인을 밟아버린 사람들은 또 다시 죄를 씻기 위해 다음 축제를 고대할지도 모른다. 상대를 밟았을 때는 가던 길을 멈추고 그를 일으켜세워야 했고 미안하다고 말해야 했다, 의도하지 않은 일이었다 해도. 죄를 씻고 나서 해도 된다고,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 사고였다고, 밀려드는 사람들을 멈추게 하기에 혼자만의 힘으론 역부족이었다고, 내가 달려가고 있던 쪽에서는 사고가 나지 않았다고 스스로를 다독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그리고 '각자'가 그런 노력을 했어야 한다.

 

세상이 이렇게 돌아가고 있다. 죄를 씻기 위한 용서와 화해는 어디에 있나. 죄의 용서마저도 한낱 '욕심'으로 치환되는 광경은 실은 내 안에서도 가끔 일어난다. 침묵하고 싶어하고, 화해할 일을 없었던 일처럼 지워버리고 싶어하고, 나는 '제외'되길 원한다. 이런 나의 욕망은 수녀원 안에서, 성당 안에서, 뉴스에서 '또 다른 나'의 얼굴을 한 이들 안에서 드러난다.

 

내가 너무 획일화하여 지나치게 생각하는 건가 싶기도 하고, 사고라고 하지만 과연 이 문제가 '사고'라는 단어 안에 갇힐 문제인가 싶기도 하다. 그렇지만 죄를 씻기 위해 몰려들었다고 하니 더 답답한 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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