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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동일한 욕구 본문

바람은 불고 싶은대로 분다

동일한 욕구

하나 뿐인 마음 2015. 6. 22. 05:11

2012.10.1.

-그들(반드시 A를 포함한 3인칭 복수)의 욕구에 대하여-

A는 늘 불만이었다.
함께 이야기하면서 식사하는 시간이 너무 길어지기 시작했고,
툭하면 이런 저런 이야기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고,
물론 재탕 삼탕 반복되는 부분이 수시로 나오는 것도 물론이고,
다음에 볼 책에 대한 이야기가 거의 스포일러 수준인 경우가 너무 많아
책에 대한 흥미까지 떨어지기가 부지기수...ㅠㅠ

가끔은 A의 이야기를 중간에 뚝 끊어버리기도 했고
(물론 그들은 자신이 A의 말을 가로채었다는 사실도 잘 모른다. 오히려 본인들은 남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타입의 사람들이라 생각했다.)
A가 끼어들 틈도 없이 자신들끼리 서로의 이야기를 이어가느라 바빴다.

하지만 그들은 좋은 사람들이었고, 온화하고 다정한 사람들이었다.
타인의 말에 귀기울이는 것을 좋아했고 친절하게 설명할 줄 아는 점은
그들의 자랑거리였다.

냉소적인 편인데다 말을 간단하게 하는 것을 좋아하는 A는
그들과의 대화자리가 늘 어려웠다.
하지만 자신의 단점도 고치고 함께 사는 모두를 위하자는 마음에
가끔씩 그들의 대화에 끼어보려는 노력도 했는데
어렵사리 꺼낸 이야기를 '전혀 악의가 없는' 그들이 단칼에 잘라버리기도 했고
그 사실도 모른채 그들은 화기애애한 웃음을 지으며 대화를 이어갔다.
그것도 아주 오랫동안.

좋아하는 주제가 아니면 설거지를 시작한다던가
다른 곳을 쳐다본다던가 반찬 그릇을 치운다던가 하는 그들의 행동도
A에게만 눈치를 살피게 할뿐 정작 본인들은 전혀 자신들의 태도를 알지 못했다.
아니, 어쩌면 알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렴풋이 알고는 있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은 건지도.

가장 아랫사람인 A는 대화가 그들에 의해 중단되었다 해도
자신의 억울함을 토로할 입장을 지니진 못했다.
게다가 대화를 파고들고 자신의 이야기를 펼쳐나간다는 것은
A에게 있어서 자존심과 관련된 일이기도 했고
그런 노력을 했다는 사실은 A자신을 충분히 우울하게 만드는 일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몇몇 일들은 A에게 영향을 끼쳤으며
A는 자신도 모르게 '건강한 노력'을 한다는 생각으로
그동안 자신의 말이 무시되어 느꼈던 섭섭함을 갚아나가기 시작했다.
조용히 식사를 하던 A를 무관심하고 냉소적이라 판단하던 그들에게
('좋은'사람들이었던 그들은 과묵하고 내향적이라고 판단하기도 했지만)
자신의 또다른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기회를 엿보며 대화에 불쑥 끼어들기도 했고
이런 저런 주제를 고심하여 고민 끝에 이야기를 시작했는데,
가끔은 그 주제가 그들의 관심사와 거리가 멀기도 했고
작정하고 뛰어들어 이야기를 하다보니
긴장이 오히려 횡설수설까지는 아니더라도
이야기를 장황하게 풀어놓기만 하고
삼천포로 빠진 이야기를 마무리하지 못하는 경우도 생겼다.

A는 이렇게 꼬여가는 상황에 점점 지쳐갔는데
어느날 이 일이 터진 것이다.

평소와 다름 없이 자꾸만 이야기를 이어가던 한 사람의 이야기에
침묵을 지키고 듣기만 하던 A가
이때쯤 환한 웃음으로 대화를 이어보겠다는 결심을 한 것이다.
긴장 상태에서 한 결심은 실천의 순간을 가늠하지 못했고
적절한 순간이라 여겼던 A의 생각과는 달리
"내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고, 내 뜻은 그게 아니다."라는 말을 듣고 말았던 것이다.
A가 놀란 것은 물론이고
자신도 모르게 뱉어버린 말에 그도 화들짝 놀랐다.
평소 자신이 친절하며 경청하는 태도를 지녔다 생각했던 그는 그 순간,
자신의 실체가 수시로 폭로되고 있었음을 그제서야 깨달았고
A는 말을 꺼낸 자신도 놀랄만큼의 단호한 그의 말에
자신의 노력이 대화참여라기 보다는
그동안의 불이익을 자신도 모르게 표현하고, 자신의 말로 그 대화를 그만 종결지으려는 욕구였음을 깨달은 것이다.

찰나같은 침묵이 흐르긴 했지만
역시나 말이 많은 편이 그가 대화를 이어가 결국은 마무리를 지었고
(물론 그는 어색함을 없애기 위해 스스로 희생, 봉사했다고 여겼을지도)
A는 결국 미소로 일관된 침묵으로 그 자리를 지켰다.

그들도 A도 결국은 동일한 욕구를 지닌 채 살고 있다.
하지만 서로 다른 종류의 사람이라고 여기며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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