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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군중 본문
'군중은 개인보다 더 다루기가 쉽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들의 삶의 공간은 더 가까워졌지만 관계는 콘크리트 벽만큼이나 딱딱하고 차갑게 단절되어 있습니다. 대규모로 모여 살아 집단을 이루고 있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소외되어 있는 군중의 속성을 고스란히 가지게 된 것입니다. 그들은 늘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남들보다 뒤떨어져 혼자 남겨질까 하는 무의식적인 강박증을 앓고 있습니다. 반성과 자각, 이웃과의 연대와 나눔이 없는 삶은 무엇을 위해 살고 있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성찰하지 않습니다.
군중 속의 개인은 개성과 삶에 대한 자신의 철학과 가치관을 잃은 채 무리의 움직임에만 민감할 뿐입니다. 달콤한 정치적 술수에 이리저리 휘둘리고 혹시라도 대열에서 낙오할까 두려워 남들이 좋다고 하는 상품은 너도나도 구입하여 유행을 만들어 냅니다.
예수님에게 군중은 늘 측은지심의 대상이었습니다. 삶의 갈피를 잡지 못하고 이리저리 몰려다니는 군중을 가엾게 바라보시고 제자들에게 목자 없는 양과 같은 이들을 위해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달라 기도하라고 이르십니다(마태 9,36-38). 군중은 거짓 목자와 정치적 선동에 휘말리고 맙니다. 빵과 기적을 좇아 구름처럼 몰려왔다가 대사제, 원로들의 선동에 돌변하여 주먹을 불끈 쥐고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라!" 소리치던 군중처럼 말입니다. 이런 군중의 속성을 누구보다 잘 아는 예수님은 사람들이 군중으로 남는 것을 거부합니다.
군중 속에 숨어 살던 자캐오(루카 19,1-10)도, 열두 해 동안 혈루증을 앓던 여인(마태 9,20-22)도, 예리코의 소경들(루카 18,35-43)도 군중으로부터 탈출하여 예수님께로 오자 예수님은 그들이 구원되었음을 선포하십니다. 회당장이라는 유다 사회 고위급 인사의 딸이 죽어 군중이 모여들었을 때도 이들을 흩으시고 난 다음에야 그 죽은 딸을 살려내십니다.(마태 9,23-26) 5천 명을 먹이실 때에도 그들이 빵만 바라는 군중이 되기를 바라지 않아 모인 사람들을 '한 무리씩 어울려 자리를 잡게 하셔서' 공동체를 만든 다음 서로를 바라보고 느끼며 빵을 나누도록 하셨습니다.(마르 6,30-44)
- '그래, 사는 거다!', 전원, 바오로딸-
... 청년들과 마태오 복음 렉시오 디비나를 2년 가까이 했다. 그동안 군중이라는 단어에 대해 많은 묵상을 했다. 군중에서 다가간 사람으로, 그리고 제자로. 나도 청년들도 예수 앞에 군중의 하나가 아니라 한 개인으로 다가서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