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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그댄 뭘 하고 있는가 본문
플루튼에 애들을 태우고 다녀오는 길에 기름이 떨어져 불이 들어왔었다. 오늘, 혹시나 급하게 떠날 일을 대비해 기름을 넣으러 가는 길에 할머니를 모시고 나섰다. 기왕 나선 김에 할머니랑 차도 한잔 마시고 휴가비를 털어 언제 맛보실지 모를 마카롱도 사드렸다. 요 근래 가장 뿌듯하고 뜻깊은 일^^
꽉 찬 코인파킹랏을 피해 좀 걸을 각오를 하고 인근 주택가에 스트릿파킹을 하는데 바로 앞 잔디밭에서 까마귀가 무언가를 사냥해서 이미... 먹고 있는 것이 보였다. 놀라시는 할머니 때문에 내리지 않고 잠시 차에 앉아 획득한 음식?을 쪼아 먹고 있는 까마귀를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지켜보다가 자리를 뜬 후에야 차에서 내려 볼일을 보았다.
마카롱을 사고 후다닥이긴 하나 커피도 한잔 했으니 30분은 족히 걸렸을 텐데, 수녀원으로 가기 위해 차에 올랐을 때까지 그 까마귀는 아직 동네를 떠나지 못한 상태였다. 맘놓고 살아갈 안식처가 필요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건 여전히 그곳을 떠나지 못하는 까마귀를 긴가민가 쳐다보는 순간, 참새인지 어린 까치인지 알 수는 없는 세 마리의 조그만 새가 쉴새 없이 까마귀를 공격하고 있었다. 별다른 반격 자세를 취하지 못한 채 작은 새들로부터 수세에 몰리고 있는 까마귀가 이상하다 싶었는데, 알고보니 까마귀의 먹이가 된 작은 새가 그 새들의 친구 내지는 가족이었던 모양이었다. 타고난 모양새 자체가 공격하기엔 부족하다보니 그저 근처를 끊임없이 맴돌며 자신의 분노를 드러내는 것 말고는 달리 뭔가를 할 수 없었지만, 지칠 법도 한데 세 마리의 작은 새들은 좀처럼 그 고된 몸짓을 멈추지 않았다. 셋이서 돌아가며 까마귀에게, 위협이라고 하기엔 뭣한 경고의 몸짓을 계속하고 있었다. 슬쩍 슬쩍 피해가며 몸을 사리는 까마귀에 비해, 큰 공격력도 없으면서 계속 맴돌며 까마귀에게 소리를 치고 번갈아 가까이 다가가는 작은 새들... 제법 긴 시간이 흘렀으니 지칠 법도 한데 날개짓을 멈추지 않는 작은 새들이 너무나 고단해 보였다.
죽고 죽이는 관계가 우리들 눈에는 잔인하고 무도해 보이나 자연의 내부 질서에는 그리 어긋나는 일이 아니기에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죽은 친구를 위해 저리도 분노를 표하는구나."라는 대화를 나누며 할머니와 그 자리를 떠나는데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성심, 너는 대체 뭘 하고 있는가?"
너는 대체 뭘 하고 있는가?
그래. 흉흉하다 못해 부끄럽기 짝이 없는 일이 끊이질 않는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연행되고, 부당한 파업에 억울함을 토로한 노동자들의 고충의 시간이 어마어마하다. 해외에선 폭압을 견디지 못해 밀항을 시도했다가 바다에 빠져 속수무책으로 죽어가고, 비리로 물든 정치판에 대한 국민들의 혐오가 하늘을 찌르다 못해 무관심으로 돌아섰다.
친구의 죽음에 대한 분노를 드러내기 위해 자신의 몇 배나 되는 까마귀에게 위협이라고 말하기도 뭣한 자세를 취하는, 지칠 줄 모르는 작은 새들을 바라보며 다시 한 번 나 자신에게 질문을 던진다, 너는 대체 뭘 하고 있는가?
뭐라도 하자. 동조하지도, 묵인하지도, 용납하지도 않겠다는 뜻을 어떻게든 표현하기 위해 뭐라도 하자.
며칠 전 마지막 저지선이 뚤리던 순간의 사진이다. 그렇게 살지 말라는, 나 역시 절대 이렇게 살지 않겠다고 어떻게든 말하고 드러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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