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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ta contemplativa

기도의 조건

하나 뿐인 마음 2013. 6. 14. 06:43

 

 

어르신 성경공부 강의를 위한 ppt 작업을 하다가 기도하는 사진을 구하기 위해 "기도"를 검색했더니 보기만 해도 절로 웃음이 나오고 흐뭇해지는 이 사진을 발견했다. 너무나 사랑스럽고 귀여운 아이들이 모여 기도를 하는 사진. 이 천사같은 어린이들이 보여주는 기도의 조건은 "눈 감음"과 "손 모음"이다.

 

얼마 전 피정에 대해 알려달라는 어느 지인의 부탁으로 개신교 신자분께 설명 할 기회가 있었는데, 피정의 첫째 조건 역시 '피속(避俗)' 혹은 '피세(避世)'임을 설명했던 기억이 났다. 눈을 감고 세상과 자신을 잠시 차단, 분리시키는 행동은 기도하려는 사람의 몸과 마음을 하느님께로 향하게 만든다. 분주한 일상을 잠시 놓아두고 고요의 세계로 떠나는 것이 기도의 시작이 아닌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도 중요하지 않다. 꼬맹이 천사들은 어린이집인지 어딘지는 모르겠지만 건물 안도 아니고 건물 밖 입구 계단에 옹기종기 앉아 있다. 조금 전 씨앗을 심었었는지 화분처럼 보이는 것과 물통들도 보인다. 아이들은 장소에 개의치 않고 발 아래에 하던 일 잠시 놓아두고, 등 뒤로 쓰레기 봉투와 너저분해 보이는 일상의 물건들이 고스란히 놓여 있는 공간에 자리잡고 순식간에 눈을 감고 손을 모아서 하느님과 직통으로 교감을 시작한다.

 

'눈 감음'과 더불어 '손 모음' 역시 보이지 않는 마음을 한 곳으로 집중한다는 표현으로 기도의 행위이다. 긴장되는 순간이나 뭔가에 집중해야할 순간에 우리들은 자신도 모르게 손을 모으거나 주먹을 꼭 쥐곤 한다. 어린이들만큼 하고 싶은 게 많았던 시절이 있었을까. 하루 24시간 동안 수도 없이 뭔가를 만지고 이야기하고 뛰어다니며 호기심에 들떠 붕붕 날아다니는 아이들이 5초라도 눈을 감고 손을 모은다는 게 과연 어른인 우리들보다 쉬운 일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붙들고 싶은 것들을 내려놓고 맨손을 맞잡은 아이들은 빈손으로 하느님을 만나는 것이다.

 

별것 아닌듯한 이 두 동작으로 우리는 이 어린이들처럼 세상 한가운데에 서 있으면서도 몸과 마음 모두 또 다른 세상, 하느님의 세상으로 옮겨갈 수 있다. 마음은 세파에 시달려 고달프기 짝이없다 해도 언제 어디서든 우리는 하느님께 기대어 도움을 청할 수도 있고 그분 품 안에서 쉼을 얻을 수 있다.

 

마음이 산란해서, 몸이 안좋아서, 할일이 많아서, 장소가 적당치 못해서... 라는 말들이 참 구차한 변명일 뿐임을 우리는 잘 안다. 지금이라도 당장 눈을 질끈 감고 두 손을 모아보자.  이 두 동작만으로도 기도는 시작되고 그 다음 순서는 '내'가 아니라 '주님'이시다. 내가 하겠다는 생각도 잠시 접어두고 주님이 알아서 하시도록 기다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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