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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요한 14,6) 언젠가 이 말씀을 묵상하다가,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이 말씀이 어떻게 들릴까 생각한(사실 종종 생각한다) 적이 있다. 누군가가 ‘그렇다면 나는 길도 진리도 생명도 될 수 없다는 말인가요? 나 스스로는 그 어떤 경지에도 도달할 수 없다는 말인가요?’하고 묻는다면 나는 뭐라고 답할 수 있을까… 있다, 없다는 짧고도 명확한 답은 하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내 경험에 비추어 본다면, 내 안에서 어딘가에 도달하려 애쓸 때마다 내가 도달한 곳은 ‘나 자신’이었다. 매번 나를 내려놓지 않고서는 나를 벗어나지도, 다른 곳에 다다를 수도 없었다. 나를 찾으려 애쓸수록 내가 얻는 것은 그저 나 하나일 뿐(이마저도 내가 되고자 ..
나는 빛으로서 이 세상에 왔다. 나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어둠 속에 머무르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요한 12,46)그분을 믿는 사람은 어둠 없는 세상에 사는 것이 아니라 어둠 속에 머무르지 않도록 매순간 의탁하고 노력한다는 말.빛이신 그분께 매일 돌아서고 다가서서, 매일 내 안의 어둠에서 벗어나고 내 곁의 어둠에서 멀어진다는 말.오늘도 말씀 안에서 기도의 방향을 배운다. 유혹을 없애달라 기도하지 않고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해달라 기도하는 것처럼,어둠을 없애달라 기도하지 않고 어둠 속에 머무리지 않도록 기도해야 한다.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알에이치코리아. 정통 추리소설의 정수라는데, 내겐 사건을 풀어나가는 과정이 너무 얽혀있는 건 아닌가 싶었던 책이다. 어렵다기보다는 복잡해서 오히려 더디게 읽게 된달까. 하지만, 나같은 사람은 따라가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반전에 반전이 거듭되는 재미는 있다. 파헤치는 이들의 끈질김만큼 범죄를 저지르고 탐하는 사람들의 집요함도 대단했다. 너무나도 기발하신 히가시노 게이코^^
강지나 지음. 돌베개 10년에 걸쳐 작성된, 가난을 짊어진 아이들의 성장 기록. 이 책은 실상을 폭로하는 데서 그치지 않으니 우리가 그저 ‘돈’, ‘도움’이라고 쉽게 말하거나 탓하지 못하게 만든다. ‘더 나은 공동체를 위해 던져야 할 단 하나의 물음이 담긴 책’이라는 은유 작가의 소개말에 깊이 공감하며 읽었는데, 당장 내 발 밑에 구멍이 뚫리진 않았지만 우리는 함께 무너지고 있음을 알아채고, 아이들 아래 뚫린 구멍에 눈을 돌리는 일이 이젠 ‘도움’을 주는 일이 아니라 ‘나의, 우리의 일’이라는 걸 다시 알려준다. p.0 "공정한 어떤 잣대로 재봐도 미국 최고의 아동살인범은 가난이다. - 테리사 푸니시엘로(미국 복지권리운동 조직가)" p.38 "경제학자로서 평생 불평등과 빈곤 문제를 연구해온 아마티아센은 ..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윤성원 옮김. 알에이치코리아. 단편집이라 생각 없이 펼쳐서 스토리의 흐름에 떠밀려 좀 읽다가 “어..?”하다가 끝나는 이야기들. 누구는 책을 덮자마자 인간에 대한 공포가 밀려왔다는데 난 오히려 씁쓸함이 밀려왔다. 평범함 속에 숨어 있는 내면의 어둠. 그 어둠을 스스로 더욱 짙고 깊게 만드는 인간들, 인간들… 이 작가의 책을 읽을수록, 흡입력이 아주 좋으면서도 재밌게만 읽히지 않는 것이 히가시노 게이고 소설의 장점 중 장점이란 생각이 든다. 죄를 짓는 사람이나 속고 속는 사람이나 사건을 풀어나가는 사람들 모두 흔히 말하는 ’매력적‘인 요소를 두루 갖춘 인물이 아니라는 것도 이 작가의 품성을 드러내는 것 같고.
마리아는 천사의 뒷모습을 어떤 심정으로 보았을까... 오늘은 이 마지막 문장에 자꾸 눈길이 갔다. 오늘은 내 심정이 성모님보다 천사 같았다고나 할까. 나도 천사처럼 조용히 할 일을 다 하고 나면, 하느님의 일이 이루어지는 것을 다 지켜보지 못한다 해도 떠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군더더기 없이 하느님의 말씀을, 두려워하는 이에게 하느님의 은총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에게 하느님의 섭리를 자잘한 내 말과 내 생각을 고운 채에 걸러내고 하느님의 말씀과 뜻을 골라내어 건낸 후, 전한 말씀이 이루어낼 그 모든 일들을 품은 채 미완성이 아니라 확신 속에서 묵묵히 돌아서서 떠날 줄 아는 삶. 그렇게 다가서고 그렇게 돌아설 것.
닭이 울기 전에 너는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요한 13,38) #dailyreading 베드로 자신이 이 말을 제대로 이해한 건 실제로 모른다고 한 이후가 아니었을까. 우리는 실패를 겪고 약함을 받아들이며 그분께 간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미 알았지만 내치지 않고 기다리고 품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