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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

알은척을 했다

하나 뿐인 마음 2026. 1. 27. 15:47

원목 일기를 시작한다. 소임 시작한지 1년 반이나 지나서 시작한다는 게 좀 웃기기도 하지만,

그래도 훗날을 위해 소소하게나마 좀 남겨둬야겠다 싶어 뒤늦게 출발.

추억처럼 남아 있는 기억도 가끔 남길 수 있기를 바라며...

 

모자동을 도는데 누군가가 알은척을 했다.

옷을 보니 간호사 선생님은 아닌데 너무나 반갑게 웃으시며, "혹시 수녀님이세요?"

마주보고 섰는데도 수녀님이냐는 말이 좀 웃기긴 했지만, 나도 환하게 웃으며 "네 맞아요."하고 인사를 했다.

그러고는 이어지는 말.

할머니께서 입원을 하셨었는데 너무 잘해주셨다며 병원에서 만나거든 꼭 인사를 해달라고 부탁하셨더랜다.

물론 손녀분께서는 일부러 나를 찾으신 것은 아니고 일하던 중에 나와 마주친 것이지만 괜히 반가웠다.

 

문00 할머니는 내가 방문한 병실의 문 바로 앞에 계셨다. 

움직이시는 것이 어려우시고 자세도 불편해서 어정쩡하게 누워계셨는데 

내가 들어갈 때도 조용히 미소를 띄시더니 환자를 방문하고 나가려는데 또 나를 쳐다보시며 눈인사를 하셨다.

신자분이냐 여쭤보니 아니라고 하셨지만 "신자가 아니시더라도 기도가 부담되지 않으시면 잠깐 기도해 드려도 될까요?"라는 말에 좋다고 하셨다.

할머니는 내가 기도를 할 때마다 손을 꼬옥 모으시고, 

기도 덕분에 많이 좋아졌다는 말을 잊지 않고 매일 하셨다.

그래서 퇴원 전까지 매일 가서 기도를 드렸고, 그 병실 환자분이 퇴원한 후에도 할머니를 만나러 병실에 들렀었다.

 

입퇴원을 거듭하시면서 우연히 또 병원 복동에서 만났고

이번에도 매일 들르며 안부도 묻고 기도도 해드리고 했는데,

휴무날 퇴원하시는 바람에 인사를 제대로 못하고 헤어졌다.

그래서 병원에서 일하는 손녀를 시켜서 인사하라 하셨다고...

안부가 살짝 궁금했었는데 잘 계시다는 말도 반가웠다.

 

꿔다 놓은 보릿자루 같은 심정으로 복도를 걷다가 생각지도 못한 감사 인사를 받고서 다시 복도를 걸아가는데,

갑자기 시원한 바람이 불더라.

(유치하지만 무관심하거나 적대적인 직원들이 좀 들었으면 좋겠다...고 잠시 생각했다는 건 안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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