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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실 본문

雜食性 人間

빛과 실

하나 뿐인 마음 2025. 8. 13. 22:32

한강. 문학과지성사.

5월 1일
대문을 들어서면 라일락 향이 그득하다.

 

노벨문학상 수상 강연문과 시, 산문, 일기를 모은 책. 강연문도 산문도 시집 읽듯 읽었다. 세상에서 전쟁이 멈추지 않는 시대를 살고 있다. 뉴스를 열면 누군가가 누군가를, 그것도 한 때 사랑했던 사람을 죽였다는 기사를 읽게 되는 세상이다. 화낼 일이 아닌데도 화를 내고, 거대한 화는 누군가를 비틀어버리지 않고서는 소강되지 않는다. 비틀어버리는 대상은 화의 대상이 아니라 만만하거나 약해서 쉬운 사람이다. 그 화는 가속이 붙은 회오리처럼 온 세상을 감돈다. 세상이, 사람이 어째서 이럴 수 있나 날마다 중얼거리게 된다. 그래서 이쪽저쪽에 조금이라도 가닿아 보려는 마음으로 책을 읽고 sns를 본다. 한강의 책은, 나를 이편저편으로 가까이 끌어들여 참상을 외면할 수 없게 한 후 기어이 한 편에 서게 한다. 어느 한 편을 미워하게 만들기보다 고통스럽더라도 어느 한 편의 손을 끝까지 잡게 만든다. 

 

어느 날부터 손가락이 아파 잠을 깨기 시작했다. 아픈 정도가 너무 빨라서 덜컥 겁이 나서 대구가 아니라 이 동네 병원을 갔는데 진료 갈 때마다 들고 간 책이다. 가벼워서 찾아들었지만, 진료갈 때마다 서늘해지는 내 마음을 차분히 안아주었다. 그래서 고맙기도 한 책이다. '아픔'을 이야기하는 책은 아픔을 고르지도, 비교하지도 않는다. 나 역시 '아픔'을 다루는 소임을 시작한 후로 아픔을 각각의 아픔으로 품는 법을 배워가고 있다. 

 

정원일기도 좋았다. 작가는 조용히 식물들의 생명을 거두는 일로 화려한(마땅하지만) 시간을 통과하고 있었다. 나도 그러고 싶다. 


p.20
"인간은 어떻게 이토록 폭력적인가? 동시에 인간은 어떻게 그토록 압도적인 폭력의 반대편에 설 수 있는가? 우리가 인간이라는 종에 속한다는 사실은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인간의 참혹과 존엄 사이에서, 두 벼랑 사이를 잇는 불가능한 허공의 길을 건너려면 죽은 자들의 도움이 필요했다. (노벨문학상 수상 강연문 중)"

p.22
"우리는 인간성을 믿고자 하기에, 그 믿음이 흔들릴 때 자신이 파괴되는 것을 느끼는 것일까? 우리는 인간을 사랑하고자 하기에, 그 사랑이 부서질 때 고통을 느끼는 것일까? 사랑에서 고통이 생겨 나고, 어떤 고통은 사랑의 증거인 것일까?"

p.34 ~ p.35
"이 세계에서 우리가 끝끝내 인간으로 남는다는 건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요? 가장 어두운 밤에 우리의 본성에 대해 질문하는, 이 행성에 깃들인 사람들과 생명체들의 일인칭을 끈질기게 상상하는, 끝끝내 우리를 연결하는 언어를 다루는 문학에는 필연적으로 체온이 깃들어 있습니다. 그렇게 필연적으로, 문학을 읽고 쓰는 일은 생명을 파괴하는 행위들의 반대편에 서 있습니다. 폭력의 반대편인 이 자리에 함께 서 있는 여러분과 함께, 문학을 위한 이 상의 의미를 나누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p.91
"그늘에서도 잘 자라는 아이들이긴 하지만, 그래도 건강하게 크게 하려면 거울을 이용하시는 것도 좋아요.
거울이요?
놀라 되묻는 나에게 그는 설명했다.
남쪽으로 비치는 햇빛을 주는 거예요. 반사시켜서. 여기는 종일 빛이 없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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