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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하나 뿐인 마음 2025. 7. 26. 22:10

교황 프란치스코. CBCK

예수 그리스도의 성심의 인간적이고 신적인 사랑에 관한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의 회칙.

책이 나오자마자 사놓고서, 너무 빨리 나왔다고 타박해선 안되지만 평번한 내가 읽기에도 뭔가(번역을?) 너무 서둘렀을까 싶었다. 

6월 성심성월을 반쯤 살고서 책을 시작했는데, 늦지 않게 읽어서 다행이다.

살면 살수록 부담스러운 수도명이지만, 또 살면 살수록 살아내고 싶은 수도명이다. 그리스도의 마음.


p.12
"정작 이유는 모른 채 이 일 저 일로 분주하게 뛰어다니다 만족할 줄 모르는 소비자이자, 우리 삶의 깊은 의미에 무관심한 시장 논리의 노 예가 되어 버린 피상성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모두 마음의 중요성을 다시 발견할 필요가 있습니다."

p.13
"심장은 간절한 바람의 자리이자 중요한 결정들이 만들어지는 자리로 여겨집니다. 플라톤은 인간의 고차원적 능력과 열정의 충동이 모두 심장에서 만나는 혈관들을 지나간다고 생각하기에 심장이 이를테면 인간의 이성과 본능의 측면을 통합시키는 데에 필요하다고 보았습니다. 이와 같이 고대부터 인간은 그저 다양한 기술의 총체가 아니라 한 개인이 경험하는 모든 것에 그 바탕이 되는 의미와 방향을 제시하는 조정 센터를 가진 육신과 영혼의 통합체라는 사실에 관한 인식이 이어져 왔습니다."

p.15
"마음 없이는 그 어떤 가치 있는 일도 할 수 없습니다. 가짜 겉모습과 거짓은 결국 우리를 빈손으로 만듭니다."

p.18
"우리가 마음의 가치를 폄하한다면, 마음에서 우러나는 말을 하고 마음으로 행동하며 마음을 기르고 치유하는 의미 또한 폄하하는 것입니다. 마음의 특별함을 인정하지 못한다면, 생각만으로는 전할 수 없는 메시지들을 놓치게 됩니다."

p.19
"우리의 모든 행위는 마음의 ‘올바른 다스림’ 아래에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에 우리의 공격적이고 집착적인 욕구들은 마음이 제시하는 더 큰 선 안에서, 악에 저항하는 마음의 힘 안에서 안식을 찾을 것입니다."

p.23
"루카 복음서 2장 51절에서 사용된 동사 디에테레이(dietre)는 '간직하다'는 의미가 있습 니다. 성모님께서 '간직하신' 것은 보시고 들으신 것의 기억뿐만 아니라 그 보시고 들으신 것에서 아직 이해하시지 못한 측면들도 포함합니다. 그럼에도 그 측면들은 성모님의 기억에 현존하며 살아 있었고, 성모님의 마음에서 '하나 되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p.29
"우리 공동체들은 마음에서 시작할 때만이 서로 다른 정신과 의지를 하나 되게 하고 화해시키는 데에 성공할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성령께서 우리를 형제자매들로서 일치를 이루도록 인도하실 수 있습니다. 화해와 평화도 마음에서 비롯합니다."

p.29
"주님 말씀을 듣고 맛보며 마땅히 받으셔야 할 공경을 주님께 드리는 일은 마음의 문제입니다. 마음만이 주님 앞에 공경과 사랑으로 순종하는 태도를 가지도록 우리의 또 다른 힘과 열정 그리고 우리의 온 인격을 형성할 수 있습니다."

p.30
"우리의 마음이 자기중심적이지 않고 부서지기 쉬우며 상처 입는다는 사실을 절대로 잊지 맙시다. 우리의 마음은 존재론적 존엄성을 지니면서 언제나 존엄한 삶을 추구해야만 합니다."

p.31
"우리는 하느님 사랑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존재의 핵심이며 신적이고 인간적인 사랑으로 불타오르는 용광로이자 인류가 열망할 수 있는 가장 숭고한 완성인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향합시다. 그 마음 안에서 우리는 마침내 진실로 우리 자신을 알게 되고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배우게 됩니다."

p.34
"예수님께서는 모든 거리를 좁히시며 우리를 만나러 오셨습니다. 우리 삶의 가장 평범하고 일상적인 실재들로서 우리에게 가까이 오셨습니다."

p.35
"주님께서는 어루만짐의 섬세한 과학을 알고 계십니다. 당신의 연민 안에서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말씀으로 사랑하시지 않습니다. 우리를 만나러 오시고, 당신의 친밀함으로 부드러운 당신 사랑의 깊이를 보여 주 십니다."

p.36
"예수님께서 가까이 오셔서 여러분 곁에 앉으시게 하십시오. 우리는 많은 사람을 신뢰하지 못하지만, 예수님은 신뢰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죄 때문에 망설이지 마십시오. 많은 죄인도 와서 예수님과 자리를 함께하였고(마태 9,10 참조), 예수님께서는 그들 가운데 그 누구에게도 분노하시지 않았다는 사실을 명심하십시오."

p.39
"예수님의 말씀은 당신의 거룩함이 깊은 감정을 배제하지 않았음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여러 번에 걸쳐 예수님께서는 열정적이며 연민을 품은 사랑을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눈물을 흘리실 정도로 마음이 움직이셨고 슬퍼하셨습니다."

p.41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자신을 내주신 것은 바오로 성인의 삶의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그에게 의미 있게 된 것은, 십자가 위에서 자기희생 뒤에 있는 더 큰 무엇, 곧 '그분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그가 알았기 때문입니다."

p.61
"생명의 원천이시자 은총의 궁극적인 샘이신 성부께 우리를 인도하시는 성령의 이끄심 덕분에 우리가 그리스도의 성심과 이루는 관계가 변화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그분 안에만 머물기를 바라시지 않습니다."

p.64
"모든 이는 자기 삶의 '중심'을, 곧 일상생활의 사건과 상황과 고난에 대처할 힘을 길어 올릴 수 있는 진리와 선의 원천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침묵 안에서 우리 자신의 심장 박동을 느껴야 할 뿐만 아니라 더 근본적으로는, 신앙 감각으로 인지할 수 있고 훨씬 더 현실적인 믿을만한 존재의 심장 박동을 느껴야 합니다. 곧 세상의 심장이신 그리스도의 현존을 느껴야 합니다."

p.68 ~ p.69
"아울러 저는, 복음과 아무런 상관없는 외부 활동과 구조적 개혁, 강박적인 조직 개편 계획, 세속적 사업, 세속적 사고 방식, 의무적 활동에만 지나치게 몰두하는 공동체와 사목자에 게서 발견되는 또 다른 이원론에서 벗어나게 해 주는 것이 그리스도의 성심이라는 사실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그러한 이원론은 신앙의 다정한 위로, 다른 사람을 섬기는 기쁨, 사명에 헌신하는 개인의 열정, 그리스도를 알게 되는 아름다움, 그리스도께서 베풀어 주시는 우정과 우리 삶에 주시는 궁극적 의미에 대한 깊은 감사가 빠진 그리스도교로 귀결되고는 합니다. 결국 이는 실체 없는 기만적인 초월주의의 또 다른 형태입니다."

p.89
"“이 마음은 인간을 너무나 사랑하여 그들에게 그 사랑을 입증하고자 남김없이 비우고 아낌없이 불사른 마음이다.” (마르가리타 마리아 알라코크)"

p.117
"또한 더 사색적이고 교양 있으며 성숙한 신앙을 가졌다고 자처하는 이들이 흔히 실천하는 차갑고 거리감 있으며 계산적이고 생색내는 사랑의 행위들보다, 주님을 위로하고자 하는 사랑의 표현들 안에 더 큰 이치와 진리와 지혜가 담겨 있을 수 있음을 모든 이가 숙고해 볼 것을 권고합니다."

p.123
"형제자매들을 향한 사랑은 단순히 우리 자신의 노력의 결실이 아닙니다. 이러한 사랑은 우리의 이기적인 마음을 바꿀 것을 요구합니다. 우리가 자주 반복하여 드리는 기도가 이러한 깨달음에서 우리나오는 것입니다. "예수님, 저희 마음을 주님 마음과 같게 하소서." 바오로 성인도 청중들에게 선행을 하도록 힘쓰라고 당부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지니셨던 바로 그 마음을 여러분 안에 간직"(필리 2,5)하라고 촉구하였습니다."

p.124
"사회의 최하위 계층과 어울리심으로써(마태 25,31-46 참조), "예수님께서는 모든 인간의 존엄성을, 특히 '품위 없다고' 여겨졌던 사람들의 존엄성을 알아보는 데에서, 커다란 새로움을 가지고 오셨습니다. 인류 역사에서 새로운 이 원칙은, 인간 개개인이 인간 ‘모습’을 잃어버릴 정도로 더 약하거나 비참하거나 고통받을 때 더욱더 우리의 존중과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음을 강조하는 원칙으로, 버림받은 신생아들, 고아들, 독거노인들, 정신질환자들, 불치병에 걸린 사람들이나 심각한 기형을 타고난 사람들, 거리에서 살아가는 사람들과 같이 곤란한 상황에 놓인 사람들을 돌보는 시설들이 생겨나게 하여 세상의 얼굴을 바꾸었습니다.""

p.128 ~ p.129
"“주님을 잘 섬기고자 하는 사람들은 고귀하고 중요한 일뿐만 아니라 하찮고 사소한 일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양쪽 모두에서 우리가 주님의 마음과 사랑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p.129
"궁극적으로 그리스도 성심의 사랑에 대한 우리의 응답은 이웃 사랑으로 나타납니다. "확고하고 항구하며 꾸준한 사랑, 사소한 일이나 사람들의 지위에 개의치 않고 변화나 적의에 굴하지 않는 사랑······우리 주님께서는 우리를 끊임없이 사랑하시고, 우리의 많은 결점과 결함을 참아 주십니다. 바로 이러한 까닭에 우 리도 우리 형제자매들에게 끊임없이 참아 주며 똑같이 해 주어야 합니다.""

p.134
"소외된 사회 구조를 폭로하고 이에 저항하며 사회 안에 공동선을 회복하고 공고히 하려는 노력을 지지하도록 우리를 이끄는 것은 윤리 규범만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러한 구조를 개선할 “의무를 부과하는 것”은 우리 “마음의 회개”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사랑을 가르쳐 주시는 예수 성심의 사랑에 대한 우리의 응답입니다."

p.136
"선한 지향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외적인 행동으로 표현하려는 내적인 염원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 되고자, 상처받은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지고자, 그저 교환 정의의 행위로만 남지 않고자 하는 보상이 되려면 까다로운 두 가지 태도가 전제되어야 합니다. 곧 우리의 죄를 인정하는 것 그리고 용서를 청하는 것입니다.… 형제나 자매에게 저지른 잘못에 대한 솔직한 인정에서 그리고 사랑이 훼손되었다는 깊고 진실된 깨달음에서 보상하고자 하는 바람이 생기는 것입니다.""

p.141
"하느님의 정의만을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면, 결국 그리스도의 희생 제사가 다소 불완전하거나 부분적인 효과만 있는 것으로 보이거나 그분의 자비가 충분히 강한 힘을 지니지 못한다는 생각으로 이어질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p.148
"그리스도의 메시지는 온전히 경험되고 표현될 때 사람들의 마음을 끌어당깁니다."

p.148
"우리가 그리스도와 맺는 개인적인 관계에 만족한 채로 다른 이들의 고통을 덜어주거나 그들이 더 나은 삶을 살도록 돕는 데에는 전혀 관심도 보이지 않는다면, 그리스도께 과연 어떠한 종류의 예배를 드리겠습니까? 우리가 개인적 신앙 체험에 몰두하여 정작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를 위하여 그리스도의 메시지가 지니는 의미를 지나친다면, 우리를 그토록 사랑하신 그 성심을 기쁘게 해 드릴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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