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雜食性 人間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하나 뿐인 마음 2025. 2. 13. 16:26


에릭 와이너 지음. 김하현 옮김. 어크로스

 

재밌었으나 원하던 책은 아니었다. '철학이 우리 인생에 스며드는 순간'이라는 부제도 그렇고, 트위터에 올라오는 사람들의 인용 구절도 그렇고, 열네 명의 철학자들의 소개와 그들의 말과 생각이 쉽고 간결하게 소개된 책이길 바랐다. 아니라고 할 수는 없는데, 내게는 소개라기보다는 철학자 콘셉트로 꾸며진 각각의 방에서 들려주는 저자의 에세이에 더 가깝다고 느껴졌다. 나도 책 리뷰이면서도 책 이야기는 별로 없고 내 이야기만 잔뜩 늘어놓는 경우가 있으니 할 말은 없지만... 

 

책을 읽고 난 후에 다시 인터넷에 책 리뷰들을 검색해 봤다. 여전히 좋은 평들이 많았다, 꼭 읽어보라는 추천과 함께. 건질 문장도 많았고 중간중간 책을 덮고 생각해 볼 주제도 많아서 좋았지만, 그만큼 견뎌야할 부분도 많았다(이건 어디까지나 나의 성격과 취향 때문이긴 하지만). 책도 나와 코드가 맞는 책이 있는 법이겠지 생각한다. 꼭 읽어보라고 떠안길 정도의 책은 아니지만, 누군가 읽어보고 싶다고 한다면 기꺼이 읽어보라 하고는 싶은 책. 

 

누가 나더러 '넌 그래서 문제야.'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지레 혼자서 뉘우치는 중이다. 글이 조금 부산스럽게 여겨져서 사실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발빠른 감정 기복을 따라가기엔 에너지 축약형 인간인 나에게는 좀 성가셨다고나 할까. 책을 덮고, 나의 무난하지 못한 독서 편력을 반성한다.


"고통은 피할 수 없는 것이다(철학자가 아니어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어떻게, 무엇을 고통스러워 하는가는 우리 생각보다 더 중요하다. 우리는 니체가 말한 "본질적인 고통"을 경험하는가, 아니면 다른 것, 그에 못 미치는 것을 경험하는가? 우리는 그저 고통을 참아내고 있나? 아니면 고통을 그 자체로 소중하게 여기는가?" 

"사람들을 화나게 하는 것은 문제 자체가 아니라 그 문제에 대한 그들의 판단이다."

"아우렐리우스의 가장 용기 있는 행동은 “타고난 비관주의를 억누르려고 부단히 노력한 것"이었다. 그는 골치 아픈 사람에게서 영향력을 빼앗으라고 제안한다. 나의 삶에 영향을 미칠 자격을 빼앗을 것. “다른 사람의 머릿속에 있는 것은 나를 해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기저기서 지혜의 부스러기를 줍기를 바라면서 비틀비틀 인생을 살아나간다. 그러면서 혼동한다. 시급한 것을 중요한 것으로 착각하고, 말이 많은 것을 생각이 깊은 것으로 착각하며, 인기가 많은 것을 좋은 것으로 착각한다. 한 현대 철학자의 말마따나, 우리는 "잘못된 삶“을 살고 있다."
 
"생각이 그렇듯이 감정도 결코 느닷없이 나타나지 않는다. 열차처럼 앞에서 감정을 끌어당기는 힘이 늘 존재한다."
 
""제대로 질문을 살아갈 때, 저는 질문이 저를 덮치게 둡니다. 그러면 이런 깊이 있는 질문의 상태가 자연히 변화를 불러옵니다."
"질문을 살아요?"
"네, 질문을 사는 겁니다. 오랜 시간 마음 한구석에 질문을 품는 거예요. 질문을 살아내는 거죠. 단순히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게 아닙니다. 우리는 너무 자주 해결책을 찾아버려요.""
 
"소로에게 간소한 삶, 고독, 자연주의는 더 큰 것, 바로 시력을 위한 것이었어요. 소로는 우리에게 앞을 보는 법을 가르쳐줘요."
 
"나는 보는 데 게으른 사람이다. 내 시선의 대상이 모든 일을 다 해주길 바란다. 경치, 한번 나를 황홀하게 해봐. 제기랄, 아름다워지라고! 그 대상이, 예를 들면 알프스 산맥이나 모네의 그림이 내 말도 안 되는 기대에 못 미치면 나는 내가 아닌 그 대상을 탓한다. 소로는 다르게 생각했다. “아름다움에 익숙한 사람은 쓰레기장에서도 아름다움을 찾아내지만, 흠잡기 선수는 낙원에서도 흠을 찾아낸다.”"
 
"아름다움은 보는 이의 마음속에 있다. 자기 자신을 향상시키지 않고는 자신의 시력을 향상시킬 수 없다. 보는 것의 역학은 양쪽으로 작용한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가 무엇을 보는지를 결정할 뿐만 아니라, 무엇을 보는가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결정한다. 《베다》에서 말하듯, “당신이 보는 것이 곧 당신 자신이다.”"
 
"충분히 좋음은 안주한다는 뜻이 아니다. 자기변명도 아니다. 충분히 좋음은 자기 앞에 나타난 모든 것에 깊이 감사하는 태도를 의미한다. 완벽함도 좋음의 적이지만, 좋음도 충분히 좋음의 적이다. 충분히 오랜 시간 동안 충분히 좋음의 신념을 따르면 놀라운 일이 생긴다. 마치 뱀이 허물을 벗듯 ‘충분히’가 떨어져 나가 고, 그저 좋음만이 남는다."
 
"베유는 "가장 큰 희열은 가장 온전하게 주의를 기울였을 때 찾아온다"라고 말했다."
 
"관심의 질이 삶의 질을 결정한다. 어디에 관심을 기울이기로 결정했느냐, 더 중요하게는 어떻게 관심을 기울이느냐가 곧 그 사람을 보여준다."
 
"우리가 종종 너무 서둘러 판단을 내리듯이 우리는 관심을 기울이는 데도 너무 성급하다. 어떤 대상이나 생각에 너무 빨리 혹하고, 그 대가를 치른다. 순식간에 지나가는 아름다움이나 친절한 행동은 보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베유는 알지 못하는 상태, 생각하지 않는 상태를 최대한 오래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려면 인내심이 필요하다. 베유가 살던 시대에는, 심지어 오늘날에는 더욱더 드문 것이다."
 
"부드럽게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라. 간디가 말했듯, 당신의 목표는 비난이 아니라 변화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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