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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희랍어 시간 본문

雜食性 人間

희랍어 시간

하나 뿐인 마음 2025. 1. 25. 22:00

한강. 문학동네.
 
존재의 한 부분을 잃고 다른 부분에 대한 선명한 지각을 얻는 사람이 있고, 한 부분을 잃음으로써 나머지 부분들 마저도 스스로 놓아버리는 사람이 있다. 어느 쪽이 더 낫다는 비교가 아니라, 사람을 이해하는 방식이 비슷해야만 마음이 맞닿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 꺼낸 말이다. "수녀님을 상징하는 것은 '목발'로 할까봐요. 대상이 넘어지지 않게 지탱하는 목적을 가진 목발처럼 이 교육에서도 발표자가 넘어지지 않게 따듯한 피드백으로 지탱해 주신 분, 병원에서도 환자들에게 목발 같은 원목자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 골라봅니다." 어떤 모임에서 들은 말이다. 여러 가지 이유로 (그리고 타인칭 시점으로) 그리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못했던 (하지만 나로서는 최선이었던...) 모임에서 내 마음을 유일하게 간파한 사람의 말이었다. 다른 사람들의 말이 의미 없어서가 아니라, 저 목표가 나를 끝까지 힘을 낼 수 있게 했던 '의미'임을 알아봐주었기 때문이다. 유일에 가까운 중요한 의미인데 드러낼 수 없었던 내 마음을 누군가는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 주는 깊은 위로. 이 소설도 알아봐주는 '위로'에 관한 이야기가 아닐까.
 
소설을 읽으며 인간의 유형에 대해 생각했다. 하지만 그 생각은 곧 내가 배웠던, 내가 만났던 수많은 유형 중 어떤 유형에 나를 묶어버리기보다는 딱 하나를 할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으로 마무리되었다. 좋은 사람들 틈에 있으면서도 외로울 때가 많았던 나는 때론 어떤 하나를 만나 깊은 평화를 누리기도 했으니,  모두를 혹은 많은 것을 줄 수 있는 사람보다는 그 하나를 알아봐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소설은 어떤 시작으로 끝이 난다. 그 시작을 향한 각자의 삶이 이어져 간결하면서도 견고한 매듭이 지어지면서 끝이 난다. 선물을 포장하기 위해 리본을 묶지만, 튼튼하면서도 정갈하게 선물을 두르는 것부터 시작해야지만 마지막에 예쁘게 묶인 리본도 의미가 있는 법. <희랍어 시간>은 끈으로 선물을 두르는 이야기다. 선물이 빠지지 않게 끈을 바르게 놓고 중심을 잘 맞춰 끈을 마주치게 하고 돌려서 고정하고 다시 헤어져 뒤집힌 뒤에야 다시 만나, 결국 매듭으로 고정하는... 그런 이야기다. 하나였지만 각자의 방향으로 뻗어나가고 휘어지고 꺾이며 뒤집혀 결국 만나게 되는 이야기. 깊은 위로의 이야기.


p.44 ~ p.45
"τὴν ἀμαθίαν καταλνέται ἡ ἀληθεία.
진실이 어리석음을 파괴한다는 중간태의 희랍어 문장입니다. 정말 그럴까요. 진실이 어리석음을 파괴할 때, 진실 역시 어리석음에게서 영향을 받아 변화할까요. 마찬가지로 어리석음이 진실을 파괴할 때, 어리석음에도 균열이 생겨 함께 부서질까요. 내 어리석음이 사랑을 파괴했을 때, 그렇게 내 어리석음 역시 함께 부서졌다고 말하면 당신은 궤변이라고 말하겠습니까."

p.54 ~ p.55
"가장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은 그녀를 이해한다는 그의 말이었다. 그것이 진실이 아니라는 것을 그녀는 담담하게 알았다. 모든 것을 묵묵히 수습하는 침묵이 두 사람을 둘러싼 채 기다리고 있었다."

p.104
"신령한 것, τ̀ο δαιμόνιον,, to daimonion과 신적인 것, τ̀ο θεῖον, tο theion의 차이가 궁금한데요. 전 시간에 θεωρία, theoria에 '본 다는 의미가 있다고 하셨는데, 신적인 것, τ̀ο   θεῖον, to theion도 '본다'는 동사와 관련되어 있습니까? 그렇다면 신은 보는 존재이거나, 시선 그 자체인 건가요?"

p.105
"모든 사물은 그 자신을 해치는 것을 자신 안에 가지고 있다는 걸 논증하는 부분에서요. 안염이 눈을 파괴해 못 보도록 만들고, 녹이 쇠를 파괴해 완전히 부스러뜨린다고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는데, 그것들과 유비를 이루는 인간의 혼은 왜 그 어리석고 나쁜 속성들로 인해 파괴되지 않는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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