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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마르코의 우물/마르코 9장 (8)
깊이에의 강요
미국 본당에서 일할 때 들었던 이야기입니다. 한국에서 입양된 한 소년이 사춘기가 되어 방황을 심하게 하자 한국전쟁 당시 미군이었던 아버지가 아들을 데리고 한국으로 갔습니다. 추운 겨울, 아들을 데리고 산을 넘고 넘어 도착한 곳은 산과 산 사이의 벌판 같은 곳이었는데 일부러 찾으려해도 어려울듯한 그 곳에 도착한 아버지는 아들에게 이야기를 하나 들려주었습니다. 전쟁 당시 대오와 떨어져 혼자 죽을힘을 다해 산속을 헤매던 군인에게 눈 덮인 산속 어딘가에서 아기 울음소리가 들려왔다고 합니다. 자신도 길을 잃어 얼어죽을지도 모르는 상태였지만 아기의 울음소리를 외면할 수 없었던 그는 얼마 후 아기와 엄마를 발견했습니다. 한 젊은 어머니가 살을 에는 듯한 추위 속에서 아기를 살리기 위해 눈밭에서 옷을 모두 벗은 채 자..
누구든지 첫째가 되려면, 모든 이의 꼴찌가 되고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 한다. (마르 9,35) 살아갈수록 세상에는 자연스럽게(나이로, 능력으로, 힘으로, 욕망으로...) 정리되는 서열에서의 꼴찌 말고 자처해서 낮은 자리나 보이지 않는, 힘을 부리지 못하는 자리로 기꺼이 내려가는 사람들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나이가 들거나 능력이 출중하지 못하거나 힘이 약해서 밀려나는 꼴찌 말고 이들을 앞세울 줄 아는 맨 마지막 꼴찌. 내가 앞서길, 내가 높이 오르길, 내가 드러나길 바라는 사람들 틈에서 고개 숙이고 시중을 들고 자신을 감추어야 하는 종처럼 살아가는 사람들까지 섬길 줄 아는 종들을 위한 종. 시종일관 이렇게 살아왔다고는 말하지 못하지만 사순시기를 시작하려는 지금, 다시 엎드리고 내려갈 준비를 한..
스승님, 저희가 여기에서 지내면 좋겠습니다. 저희가 초막 셋을 지어 하나는 스승님께, 하나는 모세께, 또 하나는 엘리야께 드리겠습니다. (마르 9,5-6) #dailyreading 좀 더 젊은 수녀였을 땐 스승과 함께 지내고 싶은 마음이 왜 꺾여야 하는지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하지만 이만큼 걸어와 뒤돌아보니 그것은 꺾이는 것이 아니라 다듬어지는 과정이었다는 걸 수긍할 수 있다. 그래도 그때는 아팠지… 내가 좋다고 생각하는 일이 늘 옳은 것은 아님을 오늘 또 배웠다. 하느님을 향한 길도 휠 수 있고, 방향을 틀면서도 앞으로 나아간다. 휜 길이라고 멈춰 선다면 영영 그곳에 갈 수 없다. 앞으로 곧장 나아가지 않는다 해서 도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나를 믿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죄짓게 하는 자는, 연자매를 목에 걸고 바다에 던져지는 편이 오히려 낫다. 네 손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마르 9,42-43) 죄의 유혹을 단호히 물리치라는 말씀이다. "나를 믿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죄짓게 하는 자는, 연자매를 목에 걸고 바다에 던져지는 편이 오히려 낫다."하시며 '남'을 죄짓게 하는 일이 얼마나 무거운 일인지를 먼저 꺼내신 후 '나'를 죄짓게 하는 경우는 세 가지나 말씀하시는데 그것은 모두 '나'이다. 나의 손, 나의 발, 나의 눈. 나를 죄짓게 하는 나의 손, 나를 죄짓게 하는 나의 발, 나를 죄짓게 하는 나의 눈. 차라리 잘라 버리는 것이, 빼 던져 버리는 것이 낫다 하시며 단호하게 이르신다, 내가 스스로 죄짓지 않도록. 우..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만 따로 데리고 높은 산에 오르셨다. 그리고 그들 앞에서 모습이 변하셨다.(마르 9,2) 우리가 당신을 따라나서며 변모해 나갈 수 있도록, 우리를 당장 바꾸기보다 당신의 변모를 보여주신 주님. 그것이 저희들을 향한 당신의 기다림임을 알겠나이다. 오늘도 서둘지 않고 기다리시는 당신께 오늘도 한 걸음 더 다가가게 하소서.
저는 믿습니다. 믿음이 없는 저를 도와주십시오. (마르 9,24) 믿음이 있어야 기도할 수 있는 게 아니라, 하느님이 계시기에 기도할 수 있다. 기도의 시작은 믿음이 아니라 그분께 있다. 그러므로 스스로 믿음이 약하다 여기는 이들도, 믿지 않는 이들도 기도할 수 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만 따로 데리고 높은 산에 오르셨다. 그리고 그들 앞에서 모습이 변하셨다. (마르 9,2)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변화를 강요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께서 변화하신다. 내가 변해야지 세상이 변한다는 말, 예수님께서 몸소 보여주신 셈. 세상을 조금이라도 변화시키려면, 남을 변화시킬 때보다 내가 변화할 때 오히려 효과적이겠지.
스승님, 저희가 여기에서 지내면 좋겠습니다. (마르 9,5) 세상의 어떤 색으로도 만들 수 없는 영광의 하얀색으로 빛나시는 예수,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 그 예수님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본 베드로는 그 순간 그 장소에 머물고 싶어서 초막을 지으려 한다. 겁에 질려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몰랐던 베드로가 그 순간에 마냥 머물고 싶었던 것처럼 요즘 나도 그저 아무것도 모른 채 산에,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머물고 싶은 심정이다. 영원한 관상의 경지는 없듯, 수도원의 일과도 기도와 일이 나란히 배치되듯 이상과 현실은 조화를 이루어야 하고 종교와 세상도, 교리와 삶도 ... 내 탓도 남 탓도, 침묵도 자성도 어렵다. 오늘처럼 높은 산에서 모호한 구름에 둘러 싸여 그저 내 모습이 감추어졌으면 하고 바란 적이 있었던가..